'젠더'와 '문화'를 통한 지식과 주체의 재구성
논문은 단순히 '남녀 차이'를 논하는 것을 넘어, 고정된 것으로 여겨지던 정체성이 어떻게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고, 다시 주체들의 실천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①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해체와 '수행성(Performa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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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을 구분하여, 성별에 따른 차별과 억압이 '바꿀 수 없는 자연'이 아니라 '변화 가능한 사회·문화적 실천'의 결과임을 입증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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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논문은 젠더가 고정된 성적 특질이나 실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행위되는 것(수행적인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자연적'이라고 믿는 생물학적 '섹스(Sex)'조차도 실은 특정한 역사적, 지배적 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해 발명되고 구성된 지식의 형태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② 객관적 지식의 허구성과 '상황지워진 지식(Situated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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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경험과 입장을 타자화시켜 온 남성중심적 지식은 결코 객관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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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보편적 지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특정한 문화와 세계관에 입각한 **'상황지워진 지식(situated knowledge)'**만이 존재합니다. 지식 생산 자체가 권력의 효과를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③ 아비투스(Habitus)와 '의미 생산'의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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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는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획득된 성향,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의 체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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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점은 아비투스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구조를 재현하는 각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행위자로 하여금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도록 허용하는 **'전략의 발생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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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는 억압적인 구조에 무의식적으로 매몰된 존재가 아닙니다. 일상생활, 의식, 이미지, 재현(표상) 등 다양한 문화적 실천을 통해 스스로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의미 생산의 주체'로 위치할 수 있습니다.
④ '행하기(Doing)'를 통한 체계(System)의 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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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들은 규범을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행하기(doing)'**를 실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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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화된 조건(체계)이 행하기의 틀을 만들지만, 역으로 주체의 적극적인 행하기가 체계를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즉, '변화된 행하기는 체계를 변화시킵니다'.
[제시의 연결과 실천] : Jessie’s Perspective
당사자의 일상과 예술적 실천의 의미
위 논문의 이론적 틀을 환자/당사자 운동과 <냉장고 안 리모컨> 프로젝트에 적용하면, 당사자들의 실천이 갖는 강력한 사회적 의미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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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화의 극복: 기존의 의료 및 복지 담론은 전문가 중심의 '객관적 지식'을 자처하며 환자/당사자의 개별적 삶의 맥락을 결핍의 지표로 '타자화'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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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권력의 전복: 당사자들이 자신의 소외된 목소리를 사회에 직접 전달하는 것은 단순한 호소가 아닙니다. 이는 지배적인 사회 담론에 맞서 자신들의 구체적 삶의 맥락이 담긴 '상황지워진 지식'을 생산하는 적극적인 정치·문화적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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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나 장애, 소외된 사회적 위치는 당사자들에게 특정한 삶의 방식과 사고체계, 즉 '환자로서의 아비투스'를 내면화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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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비투스는 무기력한 굴레가 아니라 **'전략의 발생 원리'**입니다.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발화하고 연대하는 과정은, 부여받은 '수동적 환자'라는 고정된 정체성(스테레오타입)에 균열을 내는 행위입니다. 이들은 스스로의 서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나며(주체화),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합니다
냉안리는 창작자들과 당사자들이 협력하여, 괄호 쳐져 있던 당사자들의 '일상의 서사'를 작품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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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의미화와 오표상(misrepresentations) 타파: 대중 미디어나 사회는 종종 소수자를 수동적이거나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재현(스테레오타이핑)합니다. 냉장고 안에 리모컨을 넣는 것과 같은 혼란, 단절, 독특한 삶의 궤적을 예술 작품으로 번역하는 행위는, 당사자들을 단순한 '보호 대상'에서 **'의미 생산의 주체'**로 도약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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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성 행하기(Doing)'와 사회 체계의 변혁: 젠더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행'되는 것처럼, 예술을 통한 일상의 재현은 당사자성을 능동적으로 '행하기(doing)' 하는 과정입니다. 창작자와 당사자의 연대를 통해 탄생한 작품은 대중의 낡은 인식 체계에 부딪히며,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 틀(체계) 자체를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변화시켜 나갑니다
당사자의 목소리 복원과 <냉장고 안 리모컨>과 같은 창작 실천은, 지배적인 담론에 의해 대상화되었던 당사자들이 자신의 '아비투스'를 예술과 서사라는 '상황지워진 지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의미 생산의 주체로 재구성하며, 굳건해 보이던 사회적 인식 체계에 균열을 내고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문화적 실천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의 일상을 예술로 번역하는 창작자들에게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예술적 영감의 획득을 넘어, 지배적인 문화 구조에 균열을 내는 능동적인 문화적 실천이자 연대의 의미를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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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배적 시선'의 극복과 '상황지워진 지식'의 공동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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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지배적인 문화(논문에서의 '남성적 시선')는 대상을 타자화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대상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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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들이 당사자의 삶을 대상화하거나 연민의 눈거리로 소비하지 않고, 그들의 일상적 궤적(냉장고 안의 리모컨)을 동등한 위치에서 예술로 번역하는 것은 이러한 지배적 시선을 해체하는 작업입니다. 이를 통해 창작자는 객관성을 가장한 보편적 지식이 아니라, 당사자의 구체적 삶에 입각한 **'상황지워진 지식(situated knowledge)'**을 당사자와 함께 공동으로 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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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테레오타이핑(Stereotyping)' 파기와 대안적 재현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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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미디어나 주류 사회는 소수자(여성, 환자, 장애인 등)에 대해 특정한 고정관념을 유지하며 이들을 '오표상(misrepresentations)'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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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들은 당사자들의 생생한 일상과 혼란을 작품에 담음으로써, 대상화된 이미지를 덧씌우는 기존의 재현 방식에 저항합니다. 이들은 당사자를 미디어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닌 다층적 서사를 가진 존재로 '재현(representation)'함으로써, 고착화된 사회적 이미지에 균열을 내는 문화적 매개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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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차이를 껴안는 연대(Solidarity)와 '체계'의 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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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페미니즘 이론은 대상을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뭉뚱그리기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연대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창작자와 당사자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지만,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공감하고 교차하며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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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창작 실천은 단순한 작품 활동에 머물지 않습니다. 의미를 생산하고 행동하는 '행하기(doing)'는 궁극적으로 사회의 '체계(system)' 자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집니다. 창작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소외된 이들의 삶을 긍정하고 사회적 인식의 틀을 바꾸어 나가는 체계 변혁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창작자들에게 <냉장고 안 리모컨> 프로젝트는 단순히 타자의 서사를 빌려오는 작업이 아닙니다. 이는 지배적인 사회의 시선과 스테레오타입을 해체하고, 당사자와 함께 '상황지워진 지식'을 구축하며, 예술이라는 '행하기'를 통해 낡은 인식 체계를 무너뜨리는 강력한 문화적 연대이자 실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