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0일 (월) 오전 | 사이임팩트 × 한국에자이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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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은 선임연구위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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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위진 정책위원장 (한국리빙랩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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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경 대표 (씨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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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주 이사장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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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신 대표 (내마음은콩밭 / 에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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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훈 대표 (윤슬케어 / 온랩) — 서면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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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서정주 대표 (사이임팩트)
통합 돌봄 제도가 본격 시행된 지금, 각자의 현장에서 10년을 함께 해온 파트너들이 모여 그동안 목격한 결핍, 전환의 순간,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솔직하게 나눈 대화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돌봄리빙랩 아카이브북, 사이임팩트 돌봄 정책 리포트, 그리고 학술 논문의 질적 연구 데이터로 활용됩니다.
요약
배경과 맥락
한국에자이의 10년 사회혁신 활동, 5년 가까이 된 돌봄리빙랩 활동을 정리하는 아카이브북 발간을 앞두고 현장 파트너들이 모였다. 오늘 좌담회 내용은 아카이브북, 돌봄브리프, 학술논문에 활용된다. 정승훈 대표(윤슬케어)는 일정상 서면으로 참여했다.
1부. 결핍의 기록 — 기존 시스템의 빈틈
공통 진단: 2026년 3월 27일 통합돌봄이 본격 시행됐지만 현장은 여전히 서비스 배달에 머물러 있고, 제도와 현실의 간극이 크다.
이선주 이사장(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돌봄이 필요한 순간 사람이 사회 주변부로 밀려나는 구조를 지적했다. 65세 미만이라는 이유 하나로 통합돌봄 대상에서 제외된 주민 사례를 들며, 협동조합이 지역 네트워크와 협심해 자체적으로 자원을 만들어 대응했지만 이것이 매번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현실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과거에는 가족과 마을의 비공식적 관계망이 취약성을 흡수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거의 사라진 상태에서, 제도적 투자는 늘었지만 비제도적 돌봄 관계망은 소멸해 고립이 깊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성지은 선임연구위원(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현재의 돌봄 위기를 북반구 전체의 고령화 흐름 속에 위치시켰다. 이재명 정부가 "케어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맞지만, AI 기반 탑다운 방식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리빙랩을 기술 테스트베드로 협소하게 해석하는 점을 비판하며, 코크리에이션 없는 공급자 관점의 통합돌봄이 계속된다면 진짜 목적을 놓치게 된다고 경고했다.
심재신 대표(내마음은콩밭/에필랩)는 뇌전증 리빙랩 경험을 통해, 지원 조건(발작 횟수, 약 복용 수)으로 구획된 제도가 가장 취약한 당사자를 오히려 걸러내는 역설을 말했다. 약물 난치성 뇌전증으로 발작이 잦은 환자는 자조 모임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무력감"을 지속적으로 버텨내게 해주는 장치로서 리빙랩의 역할을 강조했다.
송위진 정책위원장(한국리빙랩네트워크)은 이 모든 논의를 '2등 시민론'으로 압축했다. 병에 걸리거나 나이가 들면 2등 시민이 되고, 기존 돌봄 정책은 그 2등 시민을 도와주는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반면 돌봄리빙랩이 설정하는 가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신도 나도 1등 시민이다. 다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리빙랩은 로컬한 실험이 아니라 사회의 기본 전제를 바꾸는 시도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노동자가 2등 시민에서 협상 주체가 된 과정을 유비로 들었다.
정승훈 대표(윤슬케어) — 서면은 암경험자에게 가장 뼈아픈 결핍은 치료 후 삶에 대한 프로토콜이 없는 사회라고 했다. 병원 안에는 명확한 프로토콜이 있어 안심할 수 있었지만, 병원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온랩에서 만난 한 암경험자는 2주에 한 번 병원에 가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에서 퇴사를 권고받았다. 한국 암경험자의 사회복귀율은 30.5%로, 선진국 평균 63.5%와의 격차는 개인의 의지 차이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와 인식의 차이라고 했다.
2부. 전환의 장면 — 당사자가 혁신 주체가 된 순간
송위진 정책위원장은 65세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중증 장애인 여성 사례를 공유했다. 24시간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던 분이 65세가 되면 요양보험으로 넘어가 하루 3~4시간으로 줄어드는데, 요양 서비스는 가정 내 서비스를 기준으로 해 활동을 계속해야 하는 이 여성에게는 맞지 않는다. 바로 이런 두려움과 필요를 경험하는 당사자들이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일본 오무타 사례도 언급하며, 당사자 자체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되는 수준의 적극적 주체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선경 대표(씨닷)는 도구 자체가 변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통해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핵심이라고 했다. 암경험자들과 시스템 전환맵을 그렸을 때, 각자가 해왔던 것이 어떤 구조 아래 있는지 시각적으로 보게 되면서 "우리가 어느 즈음에 서 있구나, 어디로 가야겠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알게 됐다. 이 자각이 개인이 아닌 집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부천 어르신들과 함께할 때는 "어려운 게 뭐예요?" 대신 "가장 기쁜 때가 언제예요?"로 시작했더니 참여자들이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는 기회가 됐다. 한 시니어 참여자가 남긴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 제가 여기서 더 커진 것 같아요."
심재신 대표는 제주의 최지연님 사례를 이야기했다. 3년 전 포럼장에서 고통으로 울던 분이 지금은 제주 뇌전증 환우 단체를 만들고 토론회 패널로 활동하는 활동가가 됐다. 전환의 계기는 특정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에필랩 성과공유회에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안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나도 이 특공대의 일원이다"라는 소속감과 연대감이 변화의 트리거였다. 심재신 대표는 이분께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게 한 것 같다는 미안함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성지은 선임연구위원은 공감을 넘어 시스템 전환으로 가는 방법을 계속 고민한다고 했다. "한 번 울어주고 같이 부대껴주는 것이 능사일까? 실제로 어디를 건드렸을 때, 무엇을 만들어줬을 때 균열이 만들어지고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인가." 전환의 주체는 당사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공무원도, 연구자도 모두 당사자다. 각자의 자리에서 가진 힘을 최대한 쓰는 것이 필요하며, 나 혼자 꿈꾸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꿈꿀 수 있는 공유된 비전이 만들어질 때 막강한 힘이 생긴다고 했다.
이선주 이사장은 전환의 본질이 상호성이라고 봤다. 돌봄에 직접 참여해 누군가의 필요를 듣고 함께 반응하는 과정에서 돌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이 관계성 기반의 경험이 언어화되어 있지 않아 행정가들이 표면적 결과(혈압 수치)만 모방하는 문제가 생긴다. 돌봄리빙랩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돌봄이 과연 뭐야? 우리는 뭐가 변화되어야 돼?"라는 질문 자체를 지속적으로 붙잡는 공간으로서.
정승훈 대표 — 서면은 2020년 암경험자가 살기 좋은 시스템 전환맵을 그리던 날, 온랩 멤버들이 스스로에게 '특공대'라는 별명을 지었다고 했다. 보호 대상이 아니라 먼저 현장에 들어가 문제를 살피고 길을 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책 『암밍아웃』, 암파인니팅클럽의 삼성서울병원·서울시청 전시, 룰루랄라합창단의 국회 공연까지 이어졌다. 당사자가 중심에 섰을 때 비로소 수혜자가 아닌 사회혁신가로 전환될 수 있었고, 이 과정을 외상 후 성장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다.
3부. 미래의 과제 — 지속가능한 돌봄리빙랩을 위한 제언
성지은 선임연구위원은 미들 업다운 개념을 제시했다. 탑다운 정책과 현장 실험 사이에서 중간 주체들이 위를 향해 정책을 바꾸고 아래를 묶어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얘기해낼 수 있어야 하고, 2030년, 2050년을 얘기할 수 있는 단계로 가야 한다. 또한 돌봄을 에너지 전환처럼 혁신 성장 영역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불쌍해요, 지원해야 돼요"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일본도 유럽도 이미 돌봄을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송위진 정책위원장은 에자이가 해온 것을 시민과 함께한 기업사회혁신이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하는 기업이 대한민국에 거의 없다. 리빙랩은 방법론인 동시에 사회운동이다. 2등 시민을 일반 시민으로 재매김하면서 주체화한다는 것은 방법론으로만 볼 수 없는, 중요한 소셜 무브먼트적 의미를 가진다. 기업사회혁신을 지향점으로 리빙랩을 가져가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한선경 대표는 만들어온 밭을 버리지 말라고 했다. 돌봄리빙랩이라는 활동을 해왔다는 레코드를 지분으로 삼으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당겨올 수 있다. 이 내러티브는 글로벌 무대에서도 에셋이다. 지금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이 어떤 레이어에 있는지 보고, 비예산적으로도 이 생태계와 관계하는 방법을 정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편화돼서 과거의 좋았던 기억으로 헤어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선주 이사장은 치매와 돌봄은 따로 떼낼 수 없으며, 10년간의 경험으로 돌봄리빙랩이 가진 중요한 지점들을 구조화해내야 한다고 했다. 모든 돌봄 고민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개념만 있고 지역사회 현장과는 만나지 않는 것이다. 코그메이트를 예로 들며, 지역의 경험이 에자이의 사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관계로도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심재신 대표는 에자이가 활동가를 존중해주신 것이 컸다고 했다. 그 태도가 바로 언어화되지 않은 에자이만의 자산이다. 나이팅게일이 당시에는 중요하지 않던 지표로 치사율을 낮췄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비정량적 지표들이 사실은 더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 에자이만의 평가 기준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승훈 대표 — 서면은 온랩의 Exit을 종료가 아니라 민간이 먼저 발견하고 증명한 해법이 공공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이라고 봤다. "일자리보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먼저"라고 강조하며, 상병수당의 실질적 확대, 치료 후 마음치료 프로그램, 일상복귀 지원 바우처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참여자가 남긴 말이 이 모든 것을 압축한다. "온랩은 치료가 끝난 뒤 멈춰 선 시간에 다시 시동을 걸어준 곳."
좌담회를 관통한 핵심 키워드
결핍 — 제도의 경직성(65세 기준, 발작 횟수 기준), 치료 후 프로토콜 부재, 비공식 돌봄 관계망의 소멸, 2등 시민 프레임
전환 — 집합적 자각, 강점 중심의 질문 디자인, 상호성의 경험, 공감에서 시스템 전환으로
미래 — 미들 업다운, 돌봄을 성장 동력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기업사회혁신, 만들어온 밭을 지분으로
좌담회 전체 내용
들어가며
한국에자이에서 사회혁신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 돌봄 리빙랩을 본격적으로 운영한 지 5년이 되어간다. 그동안의 내용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이야기하는 자리로 이 좌담을 기획했다.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그 내용을 아카이브로 쌓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오늘 나온 내용은 아카이브북의 한 꼭지가 되고, 사이임팩트 돌봄 정책 리포트와 학술 논문의 질적 데이터로도 활용된다.
1부. 결핍 — 기존 시스템이 채우지 못한 빈틈
정승훈 대표 (윤슬케어 / 온랩) — 서면 답변
"치료는 끝났는데, 삶의 프로토콜이 없다"
암 경험자에게 아픈 상처 중 하나는 치료 이후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다. 치료 과정 중에는 병원과 건강보험 시스템 안에서 명확한 프로토콜이 있어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병원 밖에는 치료 후 삶의 프로토콜이 없었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 치료 후 달라진 건강 상태, 가족에게 부담을 안겨줬다는 죄책감. 이런 것들이 경제활동을 재개하는 데 부담으로 다가온다. 치료가 끝난 뒤에 암 경험자는 "이제 괜찮죠?"라는 말만 듣게 된다. 병원에서 의학적 치료는 마쳤기에 환자는 으레 "네"라고 답하지만, 마음속 문제는 정의조차 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온랩 시스템 전환 맵 워크숍. 사진: 온랩
온랩에서 만난 한 암경험자는 2주에 한 번 병원에 가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에서 퇴사를 권고받았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건강조차 상품화된 사회가 아픈 사람을 '자기관리 실패자'로 밀어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암 경험자의 사회복귀율은 30.5%에 불과하고, 선진국 평균은 63.5%다. 이 격차는 개인의 의지 차이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와 인식의 차이다.
단편적인 예시로, 회사에서는 휴직기간 연장을 위해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서에 기간을 명시해달라고 한다. 그런데 기간을 써달라는 요청에 진료실 분위기는 불편하게 바뀐다. '얼마나'에 답을 하지 못하기에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다. 환자는 홀로 문제를 감추게 되고, 곪아진 상처가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 암이라는 질환이 가지는 사회적 문제는 아직도 고용과 건강 사이에서 갈 곳을 잃고 있다.
온랩 사회복귀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 사진: 온랩 제공
그래서 온랩은 불꽃놀이 같은 1회성 지원이 아니라, 숲처럼 지속되는 돌봄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진행한 사회복귀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에는 2040 싱글 여성 암경험자 18명이 참여했다. 건강관리와 제도 교육, 심리지원, 재활 프로그램을 한 데 모아 제공한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다양한 사건이 얽혀가며 계속되는데, 환자를 위한다는 지원은 늘 조각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선주 이사장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돌봄이 필요한 순간, 사람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이선주 이사장은 자신이 최근 이사 중 한 명이 젊은 나이에 말기 암 진단을 받으면서 암 환자의 상황과 자신이 목격해온 돌봄 현장이 겹치는 지점을 새삼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핵심 진단은 이렇다. 돌봄이 필요한 순간 사람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노인과 장애인은 이미 사회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규정되어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고,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도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동일한 배제가 일어난다. 돌봄이 필요한 상태에서도 삶의 총체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장 사례를 구체적으로 공유했다. 마을 공동체에서 혼자 살고, 고립되어 있고, 질병이 있고, 우울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주민이 있었다. 그런데 65세 미만이라는 이유 하나로 통합돌봄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존 돌봄 서비스는 몇 달 안에 종료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이 사람을 옆에서 지속적으로 지지할 체계가 없었다. 결국 병원 비용도, 돌볼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까지 연락이 왔다. 협동조합은 지역 시민의원, 돌봄 네트워크와 협심해 자체적으로 자원을 만들어 응급 진료를 받게 하고 체계를 밟아가고 있다.
이 경험을 통해 이사장이 진단한 구조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 돌봄이 한정된 정책 예산 안에서 분류되어 제공되는 현행 시스템은, 실제 필요한 다양한 돌봄을 계속 새어나가게 만든다. 정책과 현장의 간극이 크다. 돌봄을 단순히 '결핍과 빈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인간의 인생에서 취약성이 차지하는 시간 자체가 길어지고 있다는 전 지구적 흐름 속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과거에는 가족, 마을의 비공식적 관계망이 이 취약성을 일정 부분 흡수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제도적 투자는 늘었지만 비제도적 돌봄 관계망은 사라졌고, 그 틈에서 고립이 깊어지고 있다.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기존 시스템의 빈틈이라고만 하기보다는, 큰 흐름 속에서 고령화라는 이슈를 봐야 하고, 우리가 담아내지 못했던 부분들을 그 큰 이슈 안에서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를 성찰적으로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도에 휘말리듯 가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통합돌봄을 했는지 잊게 된다."
현재의 돌봄 위기를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북반구 전체의 고령화 흐름 속에 위치시키며 논의의 틀을 넓혔다. 일본, 유럽도 고령화로 인해 케어 인력 부족과 재정 한계에 직면해 있으며, 돌봄은 전 세계적 이슈다. 한국이 통합돌봄을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늦게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접근 방식에 대해서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재명 정부가 "케어는 이제 국가가 책임진다"는 방향을 강조하고, AI 기반 고도화를 추진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한국 특유의 일하는 방식이 그대로 반복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첫째, 기술 공급자 관점. 수요나 욕구를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갖다 밀어 넣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둘째, 탑다운 방식. 정부가 주도하며 밀어붙이는 구조에서는 지역사회의 자생력, 다양한 특성에 기반한 코크리에이션이 실종된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리빙랩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을 '기술 실증' 또는 '테스트베드' 정도로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래서 지금 돌봄리빙랩 활동의 핵심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고 했다. 파도에 휩쓸리듯 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통합돌봄인가", "무엇을 위한 AI인가"를 성찰적으로 점검하면서, 현장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들을 큰 흐름 안에서 녹여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심재신 대표 (내마음은콩밭 / 에필랩)
"리빙랩이 자조 모임의 발전된 방식 중 하나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환자 가족들이 활동가로서 역할을 하면서 효용감도 느끼고, 그것이 또 다른 당사자나 가족들에게 자극이 되어 사회적 낙인도 이겨내고 사회로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 그게 돌봄리빙랩이 낸 균열이라고 생각한다."
뇌전증 당사자·가족 커뮤니티로 시작한 에필랩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제도나 정책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공감을 나누는 모임으로 시작했다. 그 자체로도 의미 있었지만, 가장 어려운 당사자들에게는 닿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뇌전증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약물로 발작이 조절되는 경우(전체의 약 70%)는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할 수 있지만, 약물 난치성 뇌전증으로 발작이 잦은 환자나 가족은 이런 모임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한다. 자조 모임과 커뮤니티는 이들에게 닿지 못한다.
에필랩이 시도한 것은, 비교적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아 어머니들이 더 어려운 처지의 당사자 목소리를 대신 내는 창구가 되는 것이었다.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통해 효용감을 느끼고, 그것이 또 다른 당사자에게 자극이 되는 구조를 만들려 했다.
그러나 제도의 벽은 높았다. 희귀난치병 지원 제도가 있지만, "1달에 발작을 몇 번 해야 한다", "약을 몇 개를 먹어야 한다"는 식의 조건화된 기준이 실제 다양한 필요를 걸러낸다. 보건복지부 차원에서는 뇌전증만을 위한 별도 지원이 어렵다는 논리도 있다("치매는 국가책임제인데 왜 뇌전증은 안 되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런 구조 앞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닌가"라는 무력감이 반복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리빙랩이 단순한 자조 모임과 다른 점은, 환자 가족이 활동가로서 역할을 하면서 사회적 낙인을 이겨내고 사회로 나오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 활동, 힐링 프로그램과 함께, 이 리빙랩을 통한 활동이 당사자들에게 효용감을 주고 사회 참여의 경로가 된다고 봤다.
2025 뇌전증 생활실험실 번쩍번쩍 에필랩 시즌3 성과공유회. 사진: 에필랩 제공
한선경 대표 (씨닷)
"취약성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 그런데 시스템은 그 외부를 살피지 못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생산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체계를 구축해왔고, 그게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의료가 좋아지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한 사람의 인생에서 취약성이 차지하는 시간이 많이 길어지고 있다. 취약성의 모습도 다양하다. 장애와 같이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취약도 있고, 나이가 들면서 기능적인 변화를 겪는 취약도 있고, 사회 전체의 분위기 때문에 정서적·구조적으로 나타나는 취약도 있다.
시스템은 가장 잘 일할 수 있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때를 최대화하기 위한 방식으로만 만들어져왔기 때문에, 그 외부에 있는 것들을 살피지 못했던 시기가 컸다. 정승훈 대표가 말씀하신 것처럼, 암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는 있지만 치료가 끝나고 나서 오히려 더 사회적으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 시기에 그 지원이 제도적으로도 존재하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큰 고립을 준다.
과거에는 공식적인 제도 시스템과 비공식적인 관계들이 함께 존재했다. 가족 안에서, 마을 안에서, 이웃들 사이에서 비공식적인 돌봄이 다양하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제도적으로는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비공식적인 관계들은 제도 안에서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밀려나 있다. 비공식적인 모임들이 어떻게 활성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제도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을 '제도 외의 것'이라고 보면서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이, 취약성이 강해졌을 때도 약해졌을 때도 항상 고립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구조다.
송위진 정책위원장 (한국리빙랩네트워크)
"2등 시민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병에 걸리거나 나이가 먹거나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면 이 사회에서 '2등 시민'이 된다. 2등 시민이 된 사람은 격리되거나, 집에 가두어지거나, 아니면 사회가 조금 개명하면 "이제는 도와줘야겠다"며 나온 것들이 복지나 통합 돌봄이었던 것 같다. 기본적인 프레임이 '2등 시민이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지금의 통합 돌봄도 그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반면 우리가 돌봄 리빙랩에서 설정하는 가정은 다르다. "당신이나 나나 1등 시민이다. 다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같이 대안을 만들어가고, 차이가 있는 사람이 같은 시민으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인프라와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이 프레임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에 노동자들이 2등 시민이었다가,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활성화되면서 힘을 가지고 협상하게 되었고 그 프레임이 바뀐 것처럼, 지금 돌봄을 받는 분들도 동일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려면 협상력을 가져야 한다. 그 협상력을 바탕으로 인프라도 만들고, 자신에 맞는 유니버설 디자인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리빙랩이 그 프레임 전환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서정주 대표 (사이임팩트)
"두 제도 사이에서 — 65세 장애인이 마주하는 벽"
주말에 중증 장애인 여성을 만났는데, 장애인들이 65세가 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한다고 했다. 65세가 되면 활동 지원 서비스에서 노인 장기요양보험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요양보험 등급을 받으면 하루 3~4시간만 지원된다. 장애인은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외출 자체가 불가능한데, 요양 서비스는 가정에서 서비스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가족이 있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서비스의 시작과 끝이 집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두 제도가 워낙 달라서 활동성이 있는 분들이 그 사이에서 벽에 부딪힌다. 이런 순간들이 당사자들이 느끼는 두려움이고, 동시에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2부. 전환 — 당사자가 혁신의 주체가 되는 순간
정승훈 대표 (윤슬케어 / 온랩) — 서면 답변
"'환자'에서 '특공대'로 — 암경험자가 사회혁신가가 된 날"
암 경험자가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설계했을 때였다. 2020년에 '암경험자가 살기 좋은 시스템 전환맵'을 그렸던 날, 온랩 멤버들은 스스로에게 '특공대'라는 별명을 지었다. 우리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먼저 현장에 들어가 문제를 살피고 길을 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암파인니팅클럽 ‘만다라 뜨개전’ <쉼_지금, 여기> 작품. 사진: 암파인니팅클럽
실제로 책 『암밍아웃』 제주도편을 통해 당사자의 언어를 세상 밖으로 꺼냈고, 암파인니팅클럽에서는 9명이 함께 385개의 만다라를 엮어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시청에 전시했다. 룰루랄라합창단은 앨범 2장을 발매하고 국회 공연까지 이어갔다. 비긴 어게인 역시 18명의 암 경험 참여자가 서로의 사회복귀를 지지해주는 동료가 되었다.
제2회 항암치료의 날@대한종양내과학과 룰루랄라 합창단 공연. 사진: 한국에자이
이렇게 당사자가 중심에 섰을 때 우리는 비로소 '수혜자'가 아니라 '사회혁신가'로 전환될 수 있었다. 나는 이 과정을 외상 후 성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암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다시 붙잡은 사람들, 나아가 사회를 바꾸는 사람으로 서게 되는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한 참여자는 프로그램을 마친 뒤 "누군가 나를 환자가 아니라 다시 살아갈 사람으로 봐준 것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온랩은 치료가 끝난 뒤 멈춰 선 시간에 다시 시동을 걸어준 곳"이라고 했다.
한선경 대표 (씨닷)
"방법론의 힘 — 시스템 전환 맵과 센스메이킹 워크숍"
D-Lab에서 시스템 전환 맵을 해보고, 비전 워크숍을 해보고, 센스메이킹 워크숍도 해봤다. 중요한 건 도구나 방법론이 갑자기 사람들에게 변화를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도구를 통해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거기에 온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느냐가 핵심이다.
온랩에서 암 경험자분들과 시스템 전환 맵을 그리기 위한 인셉션 워크숍을 할 때, 각자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고 각자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걸 통합적으로 정리해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시스템 전환 맵을 해보면서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어떤 구조 아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우리가 어느 즈음에 서 있구나, 어디로 가야겠다"를 가시적으로 알게 하는 기회가 됐다는 것이 분명하다.
온랩 인셉션 워크숍 실험 포트폴리오 매핑 및 시스템 전환맵. 사진: 온랩
그리고 중요한 지점이 하나 더 있다. 이게 혼자의 전환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스템 매핑이나 센스메이킹을 여러 사람이 함께 한다. 각자의 아이디어와 활동을 같이 넣게 되고, 개별적으로는 그냥 데이터였던 것들이 모였을 때 우리가 어디 있는지를 보여주게 된다. 이 자각 자체가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 그 도구가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인지"를 큰 시각에서 같이 해낼 수 있게 보여준다.
"어렵거나 힘든 점이 뭐예요?"가 아니라 "언제 가장 기뻤어요?"
부천에서 해보면서 놀랍다고 생각했던 건 첫 번째 질문을 다르게 디자인한 것이다. 어르신들에게 "어려운 게 뭐예요?"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고 가장 기쁜 때가 언제인지, 자기 삶에서 가장 긍정적인 순간이 언제인지"를 여쭤보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부천시민 100인 치매돌봄 리빙랩 워크숍. 사진: 부천치매돌봄리빙랩
그 질문이 "내가 언제 가장 내 삶이 마음에 드는지"를 이야기하게 하면서, 이 자리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완전히 다르게 설정할 수 있게 됐다. '이 활동을 통해서 내가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긍정성이 되게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긍정적인 주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질문을 디자인했을 때,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문제를 중심으로 시작하는 방법론들보다 더 강력하게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심재신 대표 (내마음은콩밭 / 에필랩)
"자조 모임에서 지역 활동가로 — 최지연 님의 이야기"
제주에 최지연 님이라는 분이 계신다. 둘째 따님이 희귀난치성 뇌전증인데, 제주에서는 뇌전증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어서 서울을 오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뭔가 해결해보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저를 만나고 에필랩 커뮤니티에 함께하게 됐다.
그분이 점점 활동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역할을 찾게 됐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활동했는데, 제주도의 환자분들 입장도 보이기 시작했다. 환자 가족뿐 아니라 환자들이 어떻게 생활을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로 하게 됐다. 뇌전증 지원센터 토론회에 패널로 나오시고, 제주의 뇌전증 환우 모임 단체를 직접 만드는 활동까지 하셨다. 그냥 아픈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에서, 지역과 환자 그룹을 대표하는 활동가로 성장하신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 멋지고 응원하는 마음도 있지만, 솔직히 죄송한 마음도 있다. 이분께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그분이 크게 느끼신 것 중 하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점이었던 것 같다.
에필랩 성과공유회를 할 때, 어떤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것보다, 전국에서 서울, 경북 칠곡, 대구, 창원, 제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오신 분들을 보고 더 큰 힘을 느끼셨던 것 같다. "제주에서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같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그 존재감을 확인한 것이 '특공대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주었다.
에필랩 시즌1 성과공유회. 사진: 에필랩 제공
뇌전증이라는 질환은 드러내기가 너무 어렵다. 혼자라고,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는 낙인이나 편견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구나"라는 걸 느끼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변화의 씨앗이었던 것 같다. 지연님을 처음 만났던 3년 전, 그분은 너무 힘들어서 고통에 울고 계셨다. 이제 GV 다큐멘터리 상영회 마지막에 직접 마이크를 잡고 "이제 시작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한 걸음 더’ 다큐멘터리 제주 상영회. 사진: 에필
이선주 이사장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돌봄의 상호성 —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언어화해야 한다"
돌봄이 대상이냐 주체냐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돌봄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고 주는 사람이 권력을 가진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보다는 상호성과 관계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가 더 정확한 질문인 것 같다.
건강 리더나 건강 지킴이들, 재택의료를 하는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들이 경험하는 것들을 많이 들여다보는데, 돌봄이라는 건 그 안에 직접 참여했을 때 변화가 일어난다. 누군가의 필요를 듣고, 그 필요를 공감하면서 참여하면, 그 돌봄의 과정 안에서 겪는 것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사람의 필요를 듣고, 그 필요를 해결해주기 위해 무언가를 했을 때 누군가가 보여주는 반응을 경험하고, 이것이 계속 주고받으면서 일어나는 상호성. 그 상호성의 경험, 관계의 경험을 통해서 돌봄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게 나한테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이 관계성 기반의 돌봄을 설명할 언어와 체계가 우리에게 없다. 실제로 건강 리더 사업에서 혈압 변화라는 정량 지표로 설명하니까 행정가들이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그 결과가 관계성에서 나왔다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려웠고, 결국 행정가들은 "지역주민 매주 가서 혈압 재면 되는구나"로만 이해해서 그것을 모방한 사업을 만들었다.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안에서 사람이 건강의 주체가 되고, 서로 지지하는 것이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부천 시민 100인 부천 치매돌봄 리빙랩. 사진: 부천치매돌봄리빙랩
돌봄 리빙랩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봄이 과연 뭐야? 우리는 무엇이 변화되어야 해?"라는 질문 자체를 계속 하는 것. 그리고 그 경험들이 기록되고 차곡차곡 쌓여서 알려져야 한다. 지금 치매 돌봄 리빙랩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아직 이 활동의 핵심 포인트가 무엇인지 잡히지 않는다. 아마 그건 아직 경험이 충분히 쌓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리빙랩을 통해서 치매를 만나고, 그 치매를 돌봄으로 경험했을 때 비로소 "아, 이거야"가 나올 것 같다.
한 계기점이 있다. 돌봄 리빙랩에 처음 참여했을 때 씨닷이 해준 워크숍에서 "내가 원래 이런 걸 좋아했지"라는 걸 오랜만에 느꼈다. 그때 처음 뵙고 그 경험이 떠오를 만큼, 그 짧은 순간이 강렬했다. 이처럼 돌봄 리빙랩의 경험이 참여한 사람 모두에게 — 당사자뿐 아니라 활동가와 운영자에게도 — 무언가를 깨우는 순간이 된다는 게 중요하다.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공감을 넘어 시스템 전환으로 — 냉철한 방법론과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얘기는 당사자가 혁신 주체로 서는 순간, 당사자를 어떤 당사자로 볼 거냐 하는 부분이다. 지속 가능한 돌봄 전환이라고 한다면, 이건 당사자가 모두를 다 얘기해야 되는 것 같다. 공무원도 될 수 있고 연구자도 될 수 있고, 모두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얘기를 들으면서 항상 최근에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 어떡하면 이 단계를, 공감을 넘어서 시스템 전환으로 갈 것이냐. 어떤 방법론을 썼을 때, 어떤 전략이 섰을 때 한 단계를 더 도약시킬 거냐라는 부분을 정말 고민을 많이 한다. 한 번 울어주고 같이 부대껴주는 것이 능사일까? 그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디를 건드렸을 때, 무엇을 만들어줬을 때 균열이 만들어지고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고,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을 진짜 많이 한다.
전환의 주체라고 했을 때 나는 연구자이고 정책가인데, 정책가로서 가질 수 있는 힘을 어디까지 최선으로 올릴 건가. 전환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정책 연구자도 피를 흘리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냥 한번 해볼까요? 너무 힘들죠가 아니라, 정말 그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냉철한 일머리와 실행까지 이어내기 위한 간절함이 있어야 하고, 그 과정을 이어낼 수 있는 진심이 있어야 한다.
소상공인들에게 AI를 어떻게 접목하느냐를 생각했을 때, 많은 소상공인들은 AI에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어떻게 갈 거냐 했을 때, 정말 이게 필요하네, 내 생계에 정말 도움이 되네 라고 하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해서 하면서, 이후에 저 사람도 하고 저 사람도 하니까 나도 되는 거네 라고 할 수 있는 부분으로 가는 것이 실제로 작동한다. 타겟을 잘 설정하고 거기서 작동하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확산시키는 냉정한 전략이 붙어야 한다.
이 프레임, 아까 송위진 박사님이 했던 것처럼 약자들을 2등 시민으로 보는 게 아니라, 니나 내나 같이 할 수 있고, 나도 시니어지만 네 문제 해결할 수 있고, 나도 환자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문가일 수 있고, 나도 저 의사랑 같이 할 수 있다는 부분으로 완전히 프레임을 만들어가야만 이 두 번째 얘기가 웅장해지고 힘이 실린다. 한 번 그림을 그렸던 부분이 아니라 그 부분을 몇 번 그리게 되면 비전이 공유가 된다. 공유된 비전이 가지는 막강한 힘이 있다. 나 혼자 꿈꾸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꿈꿀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이 되어야 한다.
송위진 정책위원장 (한국리빙랩네트워크)
"오무타(大牟田)에서 본 것 — 주체화의 더 적극적인 의미"
오무타에 갔을 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돌봄을 얘기할 때 "어떻게 잘 지원해줄까, 서비스를 어떻게 해줄까"라는 쪽의 생각을 주로 했었는데, 오무타 활동가들은 달랐다. 인구가 줄어드는 이 도시에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할 주체가 없다. 그러니까 당사자들 자체가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주체가 되거나, 스스로 돌봄의 필요를 안 느끼게 만드는 존재로 가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굉장히 신선했다.
결국 주체화를 얘기할 때, "내가 의견을 낸다"는 것을 넘어서, 자기 문제와 관련된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거나 정책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것까지를 담아야 한다. 지금의 주체화 개념은 "관계 맺고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정도"로 이야기되는데, 오무타의 활동들은 좀 더 다른 느낌이었다. 당사자가 돌봄 서비스, 돌봄 AI를 그냥 쳐다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쓸 것이고 자기들이 만들어지는 세대에 들어가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자기들의 일, 자기들의 정책, 자기들에 관련된 영역들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주체로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정주 대표 (사이임팩트)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정확하게 본다"
돌봄 리빙랩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게 있다. 한 시니어 참여자분이 "오늘 제가 여기서 더 커진 것 같아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짧은 순간 안에서도 이런 성장감을 느끼실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주말에 읽은 논문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변화해야 할 것들을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적 성장을 이루고 사회의 재건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우리 사회를 더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에너지와 아이디어와 힘이 바로 그런 분들에게 있다는 걸 리빙랩 현장에서 매번 확인하게 된다.
최지연 님이 GV 다큐멘터리 상영회 마지막에 "이제 시작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분이 계속 시작을 잘하고 활동을 이어가실 수 있게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함께 지지할 수 있을지가 이제 과제다.
3부. 미래의 과제 — 지속가능한 돌봄리빙랩을 위한 제언
서정주 대표 (사이임팩트)
"리빙랩이 실패한 사업이라는 인식을 넘어서"
정부와 국회에서 리빙랩 자체가 성과 없는 사업으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실험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변화를 만들었다는 인식이 되려면, 지속 가능한 흐름이 되려면 어떤 변화를 만들어가면 좋을지를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치매리빙랩 성과공유 세미나. 사진: 한국에자이
한국에자이는 치매 리빙랩의 디카페 사업을 인지마루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어 장기적으로 지역에서 정책화되는 데 적합한 방식으로 가져가고자 하며, 현재 15곳을 선정하는 과정 중에 있다. 치매 생태계 세미나, 경도인지장애 당사자 중심의 지역사회 일자리 사업(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노인인력개발원·은평구 협력), 부천치매돌봄리빙랩 피어서포트 및 치매 돌봄 로드맵 수립, SE브릿지(사회적기업진흥원 협력 4년차), 의정부 지자체 협력 리빙랩, 서울광역치매센터 협약 등 다양한 사업들이 준비되고 있다. 이런 변화들 속에서 돌봄리빙랩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가야 할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성지은 선임연구위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들 업다운 — 중간 주체들이 위와 아래를 동시에 묶어야 한다"
리빙랩을 하는 사람으로서 최근에 가장 의미 있다고 느꼈던 부분은, 공무원들이 리빙랩을 하면서 "시민들이나 관련된 사람들이 함께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든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최근 국립재활원과 세미나를 했는데, 케어 로봇을 개발해온 곳에서 현장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누구나 리빙랩 한다고 얘기하면 이게 리빙랩이 됩니까?"라고 물었다. 리빙랩이 과잉화되어 있지만 실제로 한 발짝 더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지금은 옆에 있는 사람과도 협력이 안 되는 상황에서, 리빙랩은 민산학연이 협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같이라는 말을 해본 적도 없고, 당사자가 주체화돼야 한다고 해본 적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 발짝 나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탑다운으로는 리빙랩 개념을 내려보내려 하고, 현장에서는 막 하면서도 위의 벽을 허물어내지 못하고 정책화도 어렵고 조례도 만들기 어렵다. 양쪽 다 한계가 있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미들 업다운이다. 중간에 주체들이 되면서 위를 향해 가고 아래를 묶어 나가는 개념이 되지 않으면 절대 변화로 가지 못한다. 위는 정권이 바뀌면 다른 얘기를 해야 하고, 아래는 여전히 불꽃놀이처럼 보인다. 중간에서 위의 얘기와 아래의 움직임을 묶어낼 수 있어야 한다.
돌봄리빙랩이 이제는 이런 개념으로 가야 한다. 누구나 들어와서 하되 플랫폼이 역할을 하면서, 위를 향해서는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나가고, 공무원도 이 개념으로 갈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아래로는 지역별로 다르고 질환별로 다른 다양한 목소리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중간 역할을 해야 한다. 돌봄리빙랩 1.0에서 2.0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 미들 업다운을 만들어나가면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계속 얘기해낼 수 있어야 하고, 2030년, 2050년을 얘기할 수 있는 단계로 가야 한다.
제1회 치매돌봄 혁신 리빙랩 포럼. 사진: 한국에자이
돌봄을 에너지 전환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전환은 사회적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혁신 성장 영역이 됐고, 자원들이 막 투입되기 시작했다. 돌봄 영역은 아직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고령화가 계속되면서 보험회사들도 들어오고 있다. 이 영역을 성장 동력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불쌍해요, 지원해야 돼요, 통합돌봄이 돼야 돼요, 주체가 돼야 돼요"만으로는 지속 가능성과 확장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케어링 같은 소셜벤처, 돌봄 관련 R&D 사업들을 함께 논의하면서 자원을 당겨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는 전환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리빙랩에만 얽매일 필요 없이 전환의 관점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풀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다.
일본도 유럽도 돌봄을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개념이 아니라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통합돌봄 발표문에도 돌봄을 강력한 국가 성장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들어가 있다. 제도의 공백과 빈틈만 찾았는데, 그게 또 다른 하나의 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2050년에는 여기서 새로운 산업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선경 대표 (씨닷)
"만들어온 밭을 버리지 말 것 — 돌봄리빙랩의 내러티브는 에셋이다"
기업이 이런 공공성 역할까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굉장히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에자이가 기업사회혁신이라는 개념을 냈을 때 아무도 왜 하냐고 안 할 정도로 넓혀서 왔기 때문에, 지금은 좁히는 것에서도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기업사회혁신의 개념을 어떻게 할 거냐고 봤을 때, 돌봄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전환이라는 부분에서 기업의 역할로 본다면 다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다. 중요한 건 지역사회와 에자이 사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돌봄 전환이라는 개념으로 들어갈 때 기업의 역할이고 commercial한 존재고 단기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면 그 다음 단계로 한 발짝도 못 나가진다는 것이다.
이만큼 에자이가 1.0을 만들어 왔다면 이것을 버릴 필요는 없다. 해왔던 것을 강점으로 가지면서, 지금까지의 레코드를 지분으로 삼아 한 발짝 더 들어간다면 훨씬 더 이야기하기 쉬워진다. 돌봄 리빙랩이라는 활동을 해왔다는 것으로는 1에서 10이 있다면 거의 10까지 당겨올 수 있는데, 기업사회혁신만 할래요 하면 최대 5밖에 못 당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놓칠 필요는 없다.
이제 돌봄리빙랩을 어떤 연대체로, 어떤 네트워크로 존재하고 싶은지 이야기해야 할 타이밍이다. 그렇지 않으면 파편화돼서 각자 가지고 있는 관계들로, 과거의 좋았던 기억으로 헤어지게 된다. 이 경험들이 주류를 향해 "이게 진짜 돌봄이 아니에요"라고 얘기하는 방향으로 계속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비예산적으로도 이 생태계와 관계하는 방법을 정해놔야 한다. 전면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로 존재하는 게 이 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되게 중요하다.
이선주 이사장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지역사회 현장과 만나는 구조화 — 돌봄의 경험을 언어로 만들어내야 한다"
치매 돌봄 리빙랩을 할 때 대학도 연결하고 치매안심센터도 연결했는데, 한국에자이가 일반 기업이었으면 같이 안 했을 것 같다. 에자이가 기업의 지역사회를 혁신하려는 진짜 가치를 보여주기 때문에 신뢰하고 함께했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을 놓치는 순간 끝이 될 수 있다. 3개의 뾰족한 사업을 핵심으로 하되, 지금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이 어떤 레이어에 있는지 보고 그들과 비예산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을 건지 그려보시면 어떨까.
기업사회혁신으로 전환할 때, 지금까지 돌봄리빙랩을 통해 구조화해놓은 중요한 지점들을 놓치면 오히려 에자이의 상상력이 더 좁혀질 수 있다. 치매와 돌봄은 따로 떼낼 수 없고, 리빙랩을 치매에만 한정하면 리빙랩 자체가 건조해질 수 있다.
청소년 쉼터 폐쇄 이야기를 정리한 자료집을 봤는데, 돌봄이 누구에게 좋았고 어떤 게 의미 있었는지를 정리해냈다. 돌봄리빙랩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지점들을 그렇게 정리해내야 한다. 에자이가 기업사회혁신으로 치매 약물을 하지만 비약물적인 것에 사회적 기여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 비약물적 영역이 무엇인지를 10년간의 경험으로 정리해낼 필요가 있다.
부천시민 100인 치매돌봄 리빙랩 워크숍. 사진: 부천 치매돌봄 리빙랩
에자이 사업들에서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각 지역이 갖고 있는 특성과 방향과 욕구대로 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개념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려웠던 점은 모든 돌봄을 다 에자이랑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에자이랑 했을 때 어디를 더 특화해야 할지가 약간 불투명하거나 너무 방대했다. 지금까지 리빙랩을 통해 만들어 놓은 돌봄의 중요한 지점들을 구조화하고, 그 구조화된 내용이 지역과 만나서 어떻게 혁신하도록 에자이가 기여할 것인가를 만들어내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모든 돌봄 고민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개념만 있고 지역사회 현장과는 안 만나는 것이다.
코그메이트를 예로 들면, 치매는 공간과 시간과 기억에 대한 진단인데 코그메이트는 인지 기억만 하나 있기 때문에 치매 진단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코그메이트가 더 발전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역과 리빙랩 방식으로 했을 때 더 의미가 있겠다. 지역을 지원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의 경험이 에자이의 사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관계로도 발전할 수 있다.
송위진 정책위원장 (한국리빙랩네트워크)
"시민과 함께하는 기업사회혁신 — 리빙랩은 방법론이자 사회운동이다"
에자이로서는 저런 움직임이 당연하고 가야 될 부분이다. 그런데 돌봄 리빙랩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해준 것에 대해 굉장히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에자이의 기업사회혁신을 5~6년 추적해왔는데 한마디로 얘기하면 시민과 함께한 기업사회혁신이다. 다른 데는 CSR이든 CSV가 되든 위탁형으로 돈을 주는 방식인데, 접근이 굉장히 다르다. 그게 차별화의 핵심이고, 그렇기 때문에 리빙랩과 연결이 되고 진화해온 것이다. 이제 시민과 함께하는 기업사회혁신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돌봄 전체를 끌고 가던 부담이 일부 없어졌기 때문이다.
시민과 함께하는 기업사회혁신을 해온 기업이 대한민국에 거의 없다. 소셜벤처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냥 소비자로 생각한다. 그동안 해왔던 시민과 함께하는 기업사회혁신의 모델들을 알리고 발산시키고, 더 적극적으로 해석된다면 한국에자이 내 아니면 에자이 본사까지 침투할 수 있는 것들도 해볼 필요가 있다.
리빙랩은 하나의 방법론으로 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하나의 방향성이자 정신으로 보고 있다. 절대로 하나의 방법론만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야 하고 더불어 가야 한다. 2등 시민이라고 했던 사람들을 일반 시민으로 재매김하면서 주체화한다는 것은 방법론으로 볼 수가 없다. 굉장히 중요한 소셜 무브먼트적인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기업사회혁신이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지향점으로 리빙랩을 가져가도 그건 나쁘지 않다.
시민과 함께 하는 기업사회혁신 week 둘째날. 기업과 시민이 동행하는 사회혁신의 사례. 사진: 이모작 뉴스 김남기
또 한편으로 새로운 좌담회를 제안하고 싶다. 다음번에는 기업사회혁신으로 가져가는 좌담회, 그리고 치매라는 이슈를 본격화하는 포럼도 하나 끌어와도 될 것 같다. 올해 한 4번 정도 하게 된다면 "야 이게 이렇게까지 되네"하는 부분이 될 수 있다. 에자이 같은 조직이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도 흔들어낼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가자는 얘기를 드리고 싶다.
심재신 대표 (내마음은콩밭 / 에필랩)
"활동가를 존중하는 태도, 그것이 에자이의 언어화되지 않은 자산이다"
기업사회혁신, 에자이가 해오신 것들에 비해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활동가로서 존중해 주신 게 컸다. 구청이나 다른 기관들은 분명히 사용자의 입장으로 저희를 대하지만, 에자이는 왜 이렇게까지 하시지 싶을 정도로 존중해주셨다.
한선경 대표님 말씀대로 에자이만의 어떤 기준과 조건들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혁신의 조건을 혁신을 평가하는 기존의 기준으로 하면 그건 혁신이 아니다. 누구를 고용하냐, 돈을 얼마 주냐 같은 기준도 있겠지만, 기업사회혁신이라고 하면 그것을 측정하는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나이팅게일이 당시에는 중요하지 않던 방식으로 치사율을 낮췄던 것처럼, 반려동물 치료, 위생 환경 같이 당시에는 별로 중요시하지 않던 지표들이 실제로는 핵심이었다. 지금 우리가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것들, 활동가들의 리트릿이라든가, 당사자들이 경험하는 것 중에서 질병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지표들이 분명히 있는데, 실증적이지 않다거나 여러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 사실 그게 더 이제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발견해내고 에자이만의 리빙랩 평가 기준으로 두면 좋겠다.
2023 HIA(hhc Driven Innovation Academy) 성과공유회. 사진: 한국에자이
에자이에서 환자들과 함께 1%의 시간을 공감한다는 것을 꼭 환자들한테만 한 게 아니라 저희 같은 활동가들의 입장, 다양한 주체들의 시간을 잘 공감해주시고 이해해주신 그런 태도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루어졌다. 이선주 이사장님 말씀대로 그것을 언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기관이나 기업과 무엇이 달랐는지, 그 매력이 제시님 개인의 매력이 아니라 에자이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매력으로 언어화되고 평가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2026년 봄, 10년의 현장을 함께 걸어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나눈 이야기는 결핍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가능성의 증언이었다. 돌봄이 필요한 순간 사람이 주변부로 밀려나는 사회, 치료가 끝난 뒤 멈춰 선 시간, 65세라는 숫자 하나로 닫혀버리는 문. 그 벽 앞에서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져왔다. 당신도 나도 1등 시민이며, 다만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제주의 최지연님이, 특공대를 자처한 암경험자들이 보여준 것처럼, 가장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돌봄리빙랩 10년은 그 앎을 함께 언어로 만들어온 시간이었다. 이 아카이브는 그 언어들의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