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보다 일자리
자녀가 하와이 2주짜리 크루즈 여행을 선물하려 했다. 어머니는 거절했다. "내가 지금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에 들어온 게 몇 년 만인 줄 아냐. 크루즈는 너네나 가라." 그분은 지금도 계속 출근 중이다.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분이다. 살림의료복지사협이 한국노인인력개발원, 한국에자이 그리고 은평구 치매안심센터와 운영하는 은평 인지마루에서 '건강이웃'으로 일하고 있다. 혼자 사는 어르신을 방문해 말벗이 되고 안부를 확인하는 일이다. 진단 이후 사회에서의 자리를 잃었던 분이, 4대 보험이 적용되는 공식 일자리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면 흔히 이런 말을 듣는다. "이제 쉬세요." 선의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 순간 직장과 역할과 일상의 루틴이 멈춘다. 서비스는 연결되지만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리는 사라진다. "도움을 받는데도 외롭다"는 말, "서비스는 늘었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현장에서 반복해서 들린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제도의 구조다. 인지 건강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사회참여라는 것은 이미 연구로 증명되어 있다. 그런데 경도인지장애나 치매 진단을 받으면 노인 일자리 참여가 어려워진다. 인지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활동에서 오히려 배제되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경도인지장애 당사자들이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꿔왔다. 그래서 그들의 직무를 당사자와 함께 개발하고 싶었다. 단순히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과 감각이 진짜 필요한 자리를 찾는 일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노인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숫자가 인지저하를 경험하게 될 시대가 오고 있다. 지금 그들을 위한 직무를 개발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사회참여가 치매로의 이환을 늦춘다는 것이 증명된 만큼, 지금의 투자는 미래의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이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
하와이를 거절한 그분이 매주 출근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거기에 자신의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역할이 생기면 관계가 생기고, 관계가 생기면 삶이 달라진다. 경도인지장애 진단이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사회, 그것을 지금 현장에서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