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쓰지 않은 역량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 계단을 오를 때,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 피로가 쉽게 풀리지 않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을 '어쩔 수 없는 노화'로 받아들이고 넘긴다. 그런데 노화 연구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 시점이 바로 가장 중요한 개입의 골든타임이라고.
노화 연구에는 '리저브 캐퍼시티(Reserve Capacity)'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예비 역량', 쉽게 말하면 "아직 쓰지 않은 능력의 여백"이다. 평소에는 잠들어 있다가 신체적·인지적 스트레스 상황에서 동원되는 잠재 자원이다. 심폐 기능과 근육량 같은 신체적 역량, 뇌의 탄력성인 인지적 역량, 사회적 관계망과 목적의식 같은 심리사회적 역량으로 구성된다.
이 예비 역량이 클수록 같은 질환에도 회복이 빠르고, 치매로 이어지는 속도가 늦어지고, 장기요양 진입 시점이 늦춰진다. 반대로 이것이 고갈된 상태에서는 사소한 자극에도 기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쇠다.
중요한 것은 이 예비 역량이 지금 당장 쌓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거창한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규칙적인 운동은 신체적 여백을 채우고,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대화를 나누는 일은 뇌의 탄력성을 키우고, 모임에 나가고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은 심리사회적 여백을 채운다. 2024년 란셋이 발표한 치매 예방 14가지 요인들이 결국 이 예비 역량을 높이는 방법들이다.*
그런데 우리의 시스템은 이 골든타임을 자꾸 놓친다. 건강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아프고 나서야 병원을 찾고 서비스를 신청한다. 예비 역량이 이미 바닥난 뒤에야 개입이 시작되는 것이다. 노인 돌봄의 목표가 더 이상 '질병 치료'가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역량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빙랩 현장에서 당사자와 함께 만드는 활동들 - 인지 검사, 운동, 사회적 참여, 지역사회 연결 - 이 모두가 사실은 이 예비 역량을 채우는 일이다. 동네에서 함께 모이고, 서로 안부를 묻고, 새로운 것을 함께 배우는 것. 특별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 일상의 연결이 예방이 된다.
아직 쓰지 않은 역량이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을 오늘도 조금씩 채워나가면 된다.
초기 생애: 낮은 교육 수준
중기 생애: 청력 손실 · 높은 LDL 콜레스테롤 · 고혈압 · 비만 · 음주 · 외상성 뇌손상 · 대기 오염
후기 생애: 흡연 · 우울증 · 신체 비활동 · 사회적 고립 · 당뇨 · 시력 손실
출처: Livingston et al., Lancet Commission on Dementia Prevention, Intervention and Care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