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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컬럼 3호] 의사가 약 대신 모임을 처방했다.

의사가 약 대신 모임을 처방했다
인구 3만 명의 작은 영국 도시 프롬(Frome). 2013년 이 도시에서 작은 실험이 시작됐다. 주치의가 환자에게 약 대신 다른 것을 처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네 독서모임, 텃밭 가꾸기, 자원봉사 활동. 의료가 아닌 지역사회의 연결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3년 후 프롬의 응급실 입원율은 14%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인근 지역은 28.5% 증가했다. 의료비도 마찬가지였다. 서머셋 전체 의료비가 21% 오르는 동안 프롬은 오히려 21% 줄었다. 첨단 장비를 도입한 것도, 예산을 늘린 것도 아니었다. 바뀐 것은 "누가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설계한 것이다.
이 실험을 이끈 줄리언 아벨은 사회적 연결성은 금연이나 음주 감소, 비만 해소보다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프롬의 데이터는 그것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그는 이 경험을 책으로 썼다. 한국어판 제목은 《누구도 홀로 외롭게 병들지 않도록》. 제목 자체가 이 모델의 철학을 담고 있다.
프롬 모델의 핵심은 세 가지다. 진료실에 '커뮤니티 연결자'를 배치해 환자를 지역사회 활동과 이어주고, 동네 안의 400여 개 모임과 자원을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해 매칭하고, 훈련받은 주민 자원봉사자가 고립된 이웃을 정기적으로 찾아간다. 이 모델은 지금 프롬을 넘어 영국 멘딥 지역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한국 현실과 겹쳐 생각했다. 지금 우리는 AI 돌봄에 수백억을 투자하고 있다. AI 스마트홈, 돌봄로봇, 인지검사 앱. 기술은 분명 필요하다. 그런데 그 기술을 받아들이고 연결해줄 사람과 구조에 대한 투자는 거의 없다. 어르신이 기술을 실제로 쓸 수 있도록 돕는 예산 항목은 비어 있다.
돌봄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있다. 기술이 먼저 만들어지고 현장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구조에서는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다. 반대로 당사자의 일상에서 출발해 필요에 맞춰 연결이 설계될 때 비로소 변화가 생긴다. 프롬이 10년 넘게 증명해온 것도 그것이다.
AI 시대 돌봄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알고리즘이 아니다. 누군가 외로운 이웃의 문을 두드리는 일, 그 연결을 설계하는 일이다. 기술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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