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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컬럼 10호] 닻을 내린다는 것 - 앵커 시대, 리빙랩이 답일 수 있다

닻을 내린다는 것 - 앵커 시대, 리빙랩이 답일 수 있다
RISE가 앵커(ANCHOR)가 됐다. 교육부는 올해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를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로 개편했다. 닻(anchor)이라는 이름처럼, 인재가 지역에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뜻이다. 청년이 지역에서 배우고, 일하고, 정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명칭 변경에 현장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간판을 바꾸느라 들인 공이 허탈하다는 대학들의 목소리도 있다. 나는 대학 산학협력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그 피로감을 가까이서 보고있다. 과제 수는 넘쳐나고, 예산 사용 규정은 복잡하고, KPI는 외우기도 어렵다. 의사결정 구조는 비효율적이고, 교수들은 교육과 연구 외에 너무 많은 행정 과업을 짊어지고 있다. 지역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정작 중요한 것을 대충 쳐내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구조에 있다. 몇 달짜리 캡스톤 프로젝트, 단기 지역연계 수업으로는 학생이 지역을 사랑할 수 없다. 진짜 닻은 짧은 방문으로 내릴 수 없다. 학생이 2년, 3년, 4년을 한 지역에 스며들면서 그곳의 문제를 자기 문제처럼 느끼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지역의 사람을 알고,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을 발견할 때 비로소 정주가 하나의 선택지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리빙랩은 앵커 시대가 요청하는 모델에 가장 가까이 있다. 리빙랩은 지역 주민과 학생이 함께 실제 문제를 발굴하고 실험하고 개선하는 방법론이다. 몇 번의 워크숍으로 끝나지 않는다. 관계를 쌓는 데 시간이 걸리고, 신뢰가 생겨야 공동실험이 가능하며, 그 결과를 다시 지역에 돌려주는 순환 속에서 학생은 어느새 지역의 일원이 되어 있다. 인구 감소, 고령화, 지역 산업의 전환-지역이 마주한 어떤 문제든 리빙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앵커가 진짜 닻이 되려면 사업 구조가 달라져야 한다. 단기 성과 중심의 KPI 대신, 학생이 지역과 맺은 관계의 깊이를 묻는 질문이 필요하다. 지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긴 호흡의 리빙랩 - 그것이 앵커가 진정한 닻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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