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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컬럼 11호] 리모컨 사용법으로는 부족한 시대

리모컨 사용법으로는 부족한 시대
목포가톨릭대학교에서 AI 시대 돌봄에 대해 강의했다. 정부가 AIP(Aging in Place) 기술과 돌봄 로봇, 스마트홈 보급에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는 자료를 보여주면서 마음이 자꾸 한 곳에 머물렀다. 정작 그 기술을 어르신이 자기 일상 안에서 쓸 수 있도록 돕는 일, 즉 에이지테크 리터러시에는 예산 배정 자체가 없었다. 항목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이 단순한 시대에는 "리모컨 사용법"만 알면 됐다. 어르신 옆에 누군가 잠깐 앉아 켜고 끄는 법을 알려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기술은 다르다. AI는 일상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스마트홈은 집 전체와 연결되어 있고, 건강 데이터는 매일 쌓인다. 단발적인 사용법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기술과 융화되어야 작동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에이지테크 리터러시는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니다. 노화에 대비해 미리 쌓아두어야 할 또 하나의 예비 역량이다. 노화 연구에서 말하는 '리저브 캐퍼시티(reserve capacity)' — 신체적·인지적·심리사회적 여백 — 이 위기에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를 지탱해주는 자원이라면, 에이지테크 역량도 마찬가지다. 건강할 때부터 일상 안에 기술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어야, 나중에 몸이 약해지거나 인지가 떨어졌을 때 그 기술이 진짜 돌봄으로 작동할 수 있다.
운동도, 식습관도, 사회적 관계도 모두 그렇다. 아프고 나서 시작하면 늦다. 건강할 때부터 일상에 녹여두어야 위기의 순간에 힘이 된다. 에이지테크 리터러시도 같은 원리로 봐야 한다. 70세에 갑자기 스마트워치를 차고 건강 데이터를 관리하라고 하면 어렵지만, 50대부터 익숙해진 사람은 그것을 자기 일상의 언어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우리 정책은 여전히 "보급"에만 머물러 있다. 기기를 사서 어르신 집에 가져다 놓는 데는 큰 예산이 들어가지만, 그 기기가 어르신의 삶 속에 자리잡도록 돕는 데는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도입은 되었지만 작동하지 않는 기술이 늘어간다. 거실 한 구석에 놓인 비싼 물건이 된다.
AI 시대의 돌봄을 진짜로 준비한다면, 기술 보급보다 더 절실한 것은 전 생애에 걸친 에이지테크 역량의 누적이다. 이것은 노년에 갑자기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청년기에, 중년에, 그리고 노년 직전까지. 일상의 결 안에 기술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노년에 비로소 기술이 자립을 돕는 도구가 된다.
에이지테크 리터러시는 미래에 대비해 채워두어야 할 또 하나의 예비 역량이다. 이 사실을 정책이 인식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종류의 투자를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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