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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컬럼 14호] 죽을 이유보다 살 이유가 많은 사회를

죽을 이유보다 살 이유가 많은 사회를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압도적인 1위다. 지난 5월 대통령은 이 문제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이런 망신도 없다"고 말했다.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 발언이 불편했다. 누군가에게 자살이라는 말은 듣는 순간 심장이 쪼그라드는 단어다. 사랑하는 이를 그렇게 떠나보낸 사람들은 평생 회복되지 않는 상실 속에서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들이 살아내는 매일은 망신이라는 단어에 담길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자살 예방을 국정 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상담전화 109 인력을 두 배로 늘리고, 위기정보 입수 주기를 단축하고, AI로 온라인 유해 정보를 감시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모두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자살률은 줄어들지 않는다. 올해 1분기에만 3,069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하루 평균 30명이 넘는다.
시스템 사고에는 빙산 모델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가 보는 사건은 수면 위에 드러난 일부일 뿐이고, 그 아래에는 반복되는 패턴, 그 패턴을 만들어내는 구조,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는 그 구조를 떠받치는 사회의 멘탈모델이 있다는 것이다. 표면만 두드려서는 같은 사건이 계속 반복된다. 자살 예방도 마찬가지다. 상담전화를 늘리고 공익광고를 만드는 것은 수면 위의 대응이다. 정작 사람들이 왜 살 이유를 잃는지, 그 구조에는 닿지 않는다.
빙산의 아래를 들여다보면 무엇이 있는가. 극심한 경쟁, 무너지는 꿈, 닿을 수 없는 집값, 젠트리피케이션, 직장 내 괴롭힘, 돌봄은 사라지고 생산성만 남은 문화, 승자만 살아남는 시스템.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조차 사치가 되었고, 취약함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죽을 이유가 살 이유보다 커지는 사회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몇 달 전 총리실이 소집한 자살예방 자문회의에 참석했다. 돌봄과 관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회의의 흐름은 표면에 머물러 있었다. 제품 포장에 예방 문구를 넣자, 공익광고를 만들자, 상담 채널을 늘리자. 빙산의 아래, 그 깊은 구조에는 좀처럼 닿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으로 회의장을 나왔다.
자살을 예방하려면 시스템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 취약함을 솔직하게 꺼내도 괜찮은 조직 문화, 소소한 일상이 충분히 가치 있다고 인정되는 사회, 한 사람의 존재 그 자체가 존중받는 공동체. 이것은 상담전화보다 느리고, 광고보다 눈에 안 띄지만, 진짜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작년 100인 시민 돌봄 회의에서 다양한 돌봄 전환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중 하나가 전 국민 돌봄 교육이었다. 어쩌면 자살 예방의 궁극적인 답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 돌볼 줄 아는 대한민국. 옆 사람의 힘듦을 알아차리고,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누군가가 무너지기 전에 그 옆에 사람이 있는 구조.
남겨진 자리에서 매일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시간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른 언어를 찾아야 한다. 망신이 아니라 슬픔, 통계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읽는 언어. 그리고 그 언어 위에 다른 사회를 함께 지어야 한다. 죽을 이유보다 살 이유가 더 많은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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