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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컬럼 12호] AI가 사람의 편이 된다면

AI가 사람의 편이 된다면
보건사회연구 인사이트 포럼에 다녀왔다. 'AI 시대, 우리는 어떤 사회를 설계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제목의 자리였다. 솔직히 어려운 자리였다. 인구학, 노동, 복지, 의료, 기술이 동시에 오갔고 발표자들의 통찰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안에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품고 있었다. AI를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쓰고 싶은가.
지금까지 AI 담론의 무게중심은 대체로 두 곳에 있었다. 효율성과 통제.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더 적은 비용으로. 돌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력 부족을 메우는 AI, 모니터링하는 AI, 데이터를 수집하는 AI. 모두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일까.
포럼을 들으며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AI가 오히려 부정의한 사회 구조를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는 없을까. 누가 돌봄의 무게를 더 많이 짊어지고 있는지, 어떤 지역이 자원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는지, 어떤 정책이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어떤 정책이 그렇지 못한지. AI는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 격차의 구조를 그려낼 수 있다.
리빙랩 현장에서 오랫동안 부딪혀온 벽이 떠올랐다. 우리는 당사자와 함께 다양한 솔루션을 공동창조해왔다. 정책도 제안해왔다. 그런데 그 작은 실험들이 임팩트로 측정되고, 시장으로 확산되고, 제도로 자리잡는 과정은 너무 어렵다. 좋은 실험들이 현장에서 끝나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가 활약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흩어진 현장의 데이터를 모으고, 임팩트를 가시화하고, 어떤 모델이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는지를 패턴으로 보여준다면, 작은 실험들이 더 빨리 제도로 이어질 수 있다.
정책 결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는 어떤 사업에 예산을 더 줘야 하는지, 어떤 제도에 인센티브를 설계해야 하는지를 대체로 직관과 경험으로 판단한다. 그 과정에 막대한 컨설팅 비용이 들어가기도 한다. AI가 임팩트를 계산해줄 수 있다면, 같은 예산을 어디에 투입했을 때 가장 많은 사람의 삶이 바뀌는지를 가이드해줄 수 있다. 비싼 외부 자문이 아니라 AI가 그 일을 일부 맡아준다면, 정책 결정의 민주성과 정확성이 동시에 높아질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인간 중심의 통합 의료·복지·돌봄 서비스를 사용자와 전문가와 AI가 함께 공동창조할 수 있다면 어떨까. AI가 위에서 답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경험과 전문가의 지식과 데이터의 패턴이 한자리에서 만나 새로운 서비스를 함께 설계하는 것. 리빙랩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공동창조의 원리에 AI라는 새로운 구성원이 합류하는 그림이다.
이렇게 쓰일 때 AI는 더 이상 인간을 대체하거나 관리하는 도구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격차를 메우고, 보이지 않던 부정의를 가시화하고, 더 나은 결정을 함께 내리는 동료가 된다. 어제 포럼에서 어렵게 받아 안은 질문들이 사실은 모두 이 한 줄로 모인다. AI가 우리에게 답을 줄 것이 아니라, 우리가 AI에게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답해야 한다. 그 변화에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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