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조직에서 취약성을 가진 사람이 일한다는 것
우리 팀에 6년째 함께 일하는 직원이 있다. 장애가 있는 직원이다. 처음 채용할 때부터 그의 특성에 맞게 직무를 설계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일. 그렇게 6년이 흘렀다.
그런데 최근 그 직원이 말했다. 다른 직원들과 같은 인사 제도를 적용받고 싶다고. 평가를 받고, 인센티브를 받고, 승진도 하고 싶다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문제인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게 아직 풀리지 않는 숙제다.
지난 5월 암생존자 고용복지 연계 간담회에 참석했다. 암 진단 후 직장 복귀를 희망하는 비율은 87%인데 실제 복귀율은 30%에 못 미친다는 데이터가 나왔다. 고용주의 62%는 암생존자를 채용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이유는 차별이 아니었다. "건강이 걱정돼서"였다. 선의가 배제를 만들어내는 구조다.
장애인 고용 지원 제도도 마찬가지다. 제도는 있다. 의무 고용률이 있고, 지원금이 있고, 인증이 있다. 그런데 현실은 숫자를 채우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 사람의 역량에 맞는 직무를 설계하고, 그가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조직은 드물다. 제도는 문을 열어줄 수 있지만, 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근본적인 질문은 여기에 있다. 능력주의를 전제로 설계된 조직에서 취약성을 가진 사람이 진짜로 환영받을 수 있는가. 평가, 인센티브, 승진이라는 언어로 작동하는 조직에서 다른 속도, 다른 역량,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동등한 구성원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조직 문화 안에서는 쉽지 않다. 그것이 차별이나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더라도. 조직이 효율성과 성과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한, 취약성은 구조 안에서 자꾸 낯선 것이 된다. 그 낯섦을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라고 하는 것, 그것이 이미 구조의 폭력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직무를 사람에 맞게 설계하는 것은 시작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평가와 보상의 기준 자체가 다양성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잣대로 다른 사람을 재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기여하는 방식을 인정하는 틀이 필요하다. 일본이 2026년부터 시행한 새 지침처럼, 조직이 배려할 의무를 명문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6년째 함께 일하는 그 직원의 질문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에 더 오래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질문 자체가, 우리가 어떤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