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기도 용인 느티나무도서관에 다녀왔다. 한일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을 마친 일본 연구자들과 함께였다. 들어서자마자 일본 연구자 한 명이 마당 미끄럼틀에 망설임 없이 올라탔다. 어른이 동네 도서관 마당 미끄럼틀을 타는 것. 그 장면이 이미 이 공간이 무엇인지를 말해줬다.
27년째 이 도서관을 이끌어온 박영숙 관장이 한 말이 계속 맴돈다.
"우리는 아무것도 제공하려 하지 않아요. 사람들의 심장이 뛰고 가슴이 뛰고, 무언가 할 수 있게 - 부싯돌 같은 역할을 하려고 해요."
제공하지 않는다. 처음엔 역설처럼 들렸다. 도서관이, 복지기관이, 플랫폼이 무언가를 제공하지 않는다니. 그런데 공간을 걷다 보니 그 말의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가족들이 처음 이 도서관에 왔을 때 "죄인처럼 여겨져 식당에도 못 갔었다"고 했다. 느티나무는 그냥 환대했다. 편안하게 있다 가도록. 몇 달이 지나면서 "이거 같이 해볼래요?" 하고 툭 건넸다. 게릴라 가드닝이었다. 허가도 없이 골목에 꽃을 심고 도망오는 일. 그 가족이 꽃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들이 다른 장애 가족들을 초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주체가 된 것이다.
관장은 이것을 "연결의 힘"이라고 불렀다. "누가 누구를 한 방향으로 돌보는 게 아니에요. 내가 돌봄의 대상이었던, 굉장히 약한 사람이 - 누군가에게 이제 그게 돌봄이 되고, 그게 자기의 돌봄이 돼요."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돌봄 리빙랩 현장에서 보아온 장면들이 겹쳤다.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고 사회에서 역할을 잃었던 분이 인지마루에서 다른 당사자의 말벗이 되는 것. 뇌전증 자녀를 키우며 고립되었던 엄마가 정책제안서를 들고 도의회에 서는 것. 돌봄을 받던 사람이 돌봄의 주체가 되는 그 전환의 순간들.
함께 방문한 일본 연구자 기무라상 인상적인 말을 했다. "책과의 상호작용은 언어의 영역이지만, 이 도서관의 활동은 몸과 근육으로 합니다. 그것이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지점이고, AI가 절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동네를 걷고, 표정을 읽고, 손으로 꽃을 심고, 함께 밥을 짓는 일. 그것은 알고리즘이 대신할 수 없다. AI 시대일수록 몸으로 하는 연결이 더 중요해진다.
현장을 다니면서 계속 인지마루(치매리빙랩에서 하고 있는 인지증 카페)가 떠올랐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인지증 카페가 느티나무처럼 될 수 있을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장이 뛰게 하는 부싯돌이 되는 곳. 치매가 있어도 꽃에 물을 주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누군가의 말벗이 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현장을 더 자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을 나오면서 관장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부싯돌. 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이 붙을 조건을 만드는 것. 돌봄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제공하는 대신, 사람들 안에 이미 있는 것에 불이 붙도록.
오늘 가슴이 뻐근할 만큼 자극을 받았다. 리빙랩이 자라는 전환의 밭에 촉촉한 ‘연결’의 비가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