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정책의 언어로 번역해야 할 때
오래된 숙제가 있다. 리빙랩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들. 경도인지장애 진단 후 은평 인지마루에서 '건강이웃'으로 일하기 시작한 어르신은 자녀가 하와이 크루즈를 선물하겠다고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4대 보험 직장이 몇 년 만인 줄 아냐. 크루즈는 너네나 가라." 첫 회기가 끝난 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참여자가 먼저 다가와 "다음 회의는 어찌합니까"라고 물었다. 건강수첩에 "강 선생님 덕분에 맛있는 두부로 음식을 해 먹었다"고 적어온 어르신도 있었다. 기억은 날마다 지워져도 감사의 감각은 남는다. 이것들을 어떻게 숫자로 만들 것인가. 그 숫자로 어떻게 정책을 움직일 것인가.
오랫동안 성과 측정을 미뤄왔다. 솔직히 비싼 컨설팅 비용을 현장 사업에 더 쓰고 싶었다. 심지어 임팩트 측정 비용이 사업비보다 더 비싼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현장에 더 쓰자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리빙랩의 결과를 확산하고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결국 이 변화들을 정책이 이해하는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멀리 가려면 천천히 가더라도 성과를 측정하고 정당성을 확보하고 근거를 쌓아야 한다.
지난 5월 콜렉티브 임팩트와 기업사회혁신 좌담회에서 서종식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본부장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비용을 공적 자원도 기업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뢰와 관계, 연결의 깊어짐이 없으면 아무 성과도 만들어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그런데 최근 소셜 임팩트 성과 측정 전문가와 나눈 대화에서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안성의 한 목욕탕 리모델링 사업의 성과는 얼마나 안전해졌는가가 아니었다. 이 많은 기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자원을 내고 함께 목소리를 낸 것, 그 협력 구조 자체가 성과였다. 리빙랩은 구조적으로 콜렉티브 임팩트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그 구조를 가시화하고 축적하는 것이 성과 측정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올해 인지마루 킥오프에 서울에서 울산, 부산, 대전까지 14개 기관이 모였다. 그 먼 거리를 오게 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수년간 함께 쌓아온 신뢰였다. 이 신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당사자가 변하고, 종사자가 성장하고, 기관들이 서로를 믿으며 같은 방향을 보는 이 구조. 이것이 이미 거대한 성과다.
이제 그 성과를 언어로 만들 때가 됐다. AI에게 말을 걸어보아야겠다. AI 기반 소셜 임팩트 성과관리 솔루션인 오렌지임팩트를 본격적으로 써보려 한다. 변화이론 프레임으로 현장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당사자의 변화와 기관 간 연결의 깊어짐을 데이터로 쌓아가는 파트너로 삼을 생각이다. 측정은 현장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 감동은 현장에 있다. 그 감동이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이 이해하는 언어로 옮겨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