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도서관에서 시작된 하루
2026년7월30일, 양천중앙도서관에서 기록에 대한 작가의 강의가 열렸다. 그리고 그 강의는 현장 실습으로 이어졌다. 강의 제목은 "마을기록, 현장체험" - 양천구립도서관 리빙랩이 올해 처음으로 시도하는 실험 "지역서점 이야기 수집" 프로젝트의 워밍업 자리였다. 강사로 초청된 이는 300여 편의 소설을 써온 소설가 정명섭 작가. 한국전쟁 구술 자료부터 형사·프로파일링 관련 취재까지 오랜 시간 '듣는 사람'으로 살아온 그가, 이날은 마을의 평범한 이야기를 채록하려는 시민 실험가들 앞에 섰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일행은 오목교 인근,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작은 서점 하나로 향했다. 44년째 운영 중인 에덴서점. 강의에서 배운 원칙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참가자들은 곧바로 실전 인터뷰에 던져졌다.
1부. 듣는다는 것의 기술 - 구술 채록 워크숍
믿되, 믿지 않기
정명섭 작가가 가장 먼저 꺼낸 원칙은 얼핏 모순처럼 들렸다. 상대방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믿지 않아야 한다. 라포 없이는 아무도 속내를 열지 않지만, 구술자 역시 자기 기억을 자기중심적으로 재구성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 당시 팔미도 등대 점등 일화를 예로 들며, 오랫동안 '사실'로 통했던 개인의 증언이 정황 검증 앞에서 흔들리는 과정을 짚었다. 채록자는 구술자를 존중하되, 그 말이 곧 객관적 사실이라 전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두 번째 원칙은 채록자의 위치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의 중심에 서고 싶어 하며, 인터뷰이 역시 마찬가지다. 채록자가 할 일은 그 무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상대가 주인공으로 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일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이를 "나는 걸어 다니는 녹음기"라는 표현으로 요약했다. 기록의 수단이지 이야기의 주체가 아니라는 자각이, 오히려 좋은 인터뷰를 만든다는 것.
현장 준비: 사전 조사가 곧 존중이다
기술적인 조언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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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정보 습득: 인터뷰 대상에 대한 언론 기사, SNS, 공개된 인터뷰 기록을 미리 찾아보는 일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행위다. 상대가 언론에 늘 하던 말고, 자랑스러워하지만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지점을 짚어낼 때 신뢰도는 크게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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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 에티켓: 녹음기는 사전 테스트를 거치고, 무음 상태로 뒤집어 두며, 딱딱한 테이블보다는 다이어리 위에 올려두는 편이 음질과 분위기 모두에 낫다. 녹음 시작 고지는 딱딱하게 선언하기보다 대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건네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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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폭: 지나치게 구체적인 질문("몇 년 몇 월 며칠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은 상대를 위축시켜 그저 "맞다"고 넘어가게 만든다. 반대로 지나치게 열린 질문("어떻게 하셨어요")은 답이 산으로 간다. 적당한 중간 지점, 시기와 상황을 짚어주되 구체적 답은 상대에게 맡기는 질문법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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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질문: "혹시 제가 못 여쭤본 것 중에,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이 한 문장이 가장 중요한 순간을 열어준다고 그는 반복해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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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와 동의: 채록 후 정리된 원고를 구술자에게 보여줄지 여부는 정답이 없지만, 공개를 전제로 한 기록이라면 구술자가 원할 경우 검수 기회를 주는 편이 이후의 분쟁을 막는다. 다만 삭제 요청은 존중하되, 내용을 임의로 바꿔달라는 요구까지 수용할 필요는 없다는 선을 분명히 했다.
강연은 인터뷰 실습을 앞둔 참가자들에게 실질적인 지침이자 동시에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사전 질문지는 상대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으며, 결국 '정답'은 현장에서 부딪혀보며 각자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2부. 현장으로 — 에덴서점, 44년의 기록
"에덴"이라는 이름의 유래
서점 대표는 올해 여든이다. 특정 종교는 없지만("나는 무교인데") 부인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고, 본인의 결혼식도 성당에서 치렀다고 했다. 원래 1977년부터 서울대학교 인근 하숙촌에서 문구점을 운영했는데, 그때 같이 문구점을 하던 친구가 이 동네로 옮겨와 서점을 열었다. 그 친구는 훗날 목사가 되어 정년퇴임했다. 친구가 붙인 이름 '에덴'이 그대로 지금 서점의 이름이 되었다. 사업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우연히 이어받은 이름을 굳이 바꾸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
인수를 결심한 이유를 묻자 그는 장래성과는 무관했다고 잘라 말했다. 1962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4.19가 나던 해엔 중학교 2학년이었다) 도서 위원으로 활동하며 정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통째로 읽었던 경험, 그리고 그저 책이 좋았다는 것이 유일한 동기였다. "죄와 벌 같은 책은 서점 하면서도 다섯 번쯤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다르더라"는 그의 말은 왜 책을 파는 사람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직한 답이었다.
사회과학 책과 함께 바뀐 사람
서울대 근처에서 문구점을 할 때 그의 손님 대부분은 서울대생이었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사회과학 서적을 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이 시기를 "그때부터 내가 좀 변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1~2권만 나오고 금서로 묶였던 시절이었는데, 이후 나온 완결본을 서점을 하며 직접 읽었던 기억, 이영희 교수의 『8억인의 대화』(당시 중국을 '중공'이라 부르던 시절 금서였던 책) 등을 그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은 『전태일 평전』이었다. 전태일과 자신이 1947년생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초등학교만 나온 전태일이 이룬 일과 자신의 삶을 계속 비교하며 읽었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털어놓았다. 무뚝뚝한 부산 사람 특유의 말투 뒤에 자리한 이 대목은, 이날 인터뷰에서 가장 깊이 있는 순간 중 하나였다. 그는 덧붙여 "요 근래 와서는 초등학생에게도 말을 높여준다"며, 예전엔 자신이 불친절하게 보였을지 모른다는 자기 성찰도 내비쳤다.
IMF, 그리고 두 번의 큰 파도
서점의 45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지금 위치가 아니라 길 건너, 지금의 던킨도너츠 자리였다. IMF 이전에는 장사가 매우 잘 되어, 권리금만 1억 5천을 준다는 제안이 들어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1997년 IMF가 터지자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서적 구입 문의를 하던 손님들의 연락이 끊기고, 임대료는 300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결국 2000년대 초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2002년 6월 지금의 지하 자리로 옮겼다. 마침 임대료가 저렴했던 데다 조금씩 경기가 살아나던 시기여서, 출판사들이 책을 밀어주며 서가를 다시 채울 수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 파도는 코로나19였다. 역설적으로 그는 코로나 시기가 "지금보다 몇 배 나았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 다들 "코로나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엔데믹 이후 매출이 매년 10~20%씩 꾸준히 줄어드는 중이라고 했다. 40년 전에는 책 한 권이 천 원, 문제집이 1,500원이던 시절이었는데도 그때의 매출이 지금보다 나았다는 그의 말은, 책값이 오른 것과 무관하게 서점업 자체가 겪는 구조적 위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심야책방, 다시는 안 할 겁니다
서점 운영 이력에서 그가 가장 단호하게 선을 그은 지점은 '심야책방' 경험이었다. 몇 해 전 시도해봤는데, 손님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온다고 해놓고 안 오면 다시 전화해서 캐물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그 애매한 처지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천만 원을 줘도 앞으로 이건 안 하겠다"는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 지금도 지자체에서 심야책방 지원금이 몇백만 원씩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신청하지 않는다고 했다.
책장은 그대로, 직거래는 늘어나고
서가 구성에 대해 묻자 그는 시대에 따라 바뀐 것이 거의 없다고 답했다. 문학은 문학, 철학·사상은 철학·사상 자리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다. 책이 위 칸까지 빼곡히 쌓여 있는 것도 진열 전략이 아니라, 2002년 이 자리로 온 뒤 서가가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쌓아둔 것이 굳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소규모 출판사 20여 곳과 직거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판사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전국에서 80세 넘은 나이에 직접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자신 말고는 없다고 한다. 지방 서점들은 대부분 자녀나 2세에게 물려주고 뒤로 물러나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 그는 이를 두고 "물려줄 만한 업종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좋아하는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고 말했다.
전자책 앞에서 흔들린 서점 주인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전자책에 대한 이중적 태도였다. 예전 국민은행 거래 고객에게 전자책을 무료로 볼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되던 시절, 그는 8인치 태블릿으로 전자책을 접했다. 공짜로, 원하는 책이 아니어도 인기 도서를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그는 "야, 서점 이거 안 되겠구나" 하는 직감을 느꼈다고 한다.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전자책의 편리함에 매료되는 동시에, 그 편리함이 자신의 생업을 잠식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는 역설적인 순간이었다. 지금은 노안이 와서 종이책도 전자책도 예전만큼 못 본다고 했다.
하루의 리듬, 부부의 리듬
그의 하루는 출근해서 불을 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 공간 자체가 좋다는 말을 그는 여러 차례 반복했다. 손님이 없어도 책 입력·정리 업무와 서점 조합 관련 공적인 일이 끊이지 않아 늘 바쁘다고 한다. 3년 전부터는 일요일을 쉬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손님이 줄어서라기보다 "아내와 함께 있어줘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밤 9시에 퇴근해 9시 50분쯤 집에 도착, 10시 10분이면 잠들고, 새벽 2시 반~3시 사이 깨어나 운동을 하러 나간다. 4시 반까지 운동하고 다시 집에 돌아와 잠들었다가 8시쯤 일어나 출근하는 루틴이다. 75세인 부인도 같은 시간에 함께 운동을 다닌다. 원래는 자전거를 탔지만 낙상 사고로 쇄골에 철판을 넣은 뒤로는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 루틴을 유지하는 이유를 그는 "정신이 맑아야 하고, 몸이 건강해야 나중에 내가 직접 정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기고 싶은 꿈
인터뷰 말미, 그에게 꿈을 물었다. 그는 88세까지 정신이 온전한 상태로 살다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서점을 스스로 정리하고 조용히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 치매보다는 차라리 암이 낫겠다는 그의 말에는, 88이라는 숫자를 향해 매일 새벽 운동을 반복하는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부. 김보영 작가와 에덴서점
이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이름이 있다. SF 소설가 김보영이다. 사장님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부터 이 서점을 드나들며 자란 손님 중 한 명으로, 지금은 강원도에 거주하며 유명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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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작가는 이후에도 몇 차례 서점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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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저자로서 받는 지원금(강연·행사 지원금 등)이 몇백만 원 단위라는 이야기가 오가며, 사장님은 "너 얼마를 줘야 되는데"라는 농담 섞인 반응을 보였다.
4부. "자리는 얼마든지 내어줄게" — 서점을 책모임 공간으로
인터뷰 후반, 참가자 한 명이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언급하며 물었다. 극 중 서점 주인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책 한 권을 정해 독서 토론을 하는 장면처럼, 에덴서점에서도 그런 모임을 열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사장님의 반응은 뜻밖에 적극적이었다. "그건 진짜 좋은 이야기"라며, 예전에도 비슷한 걸 시도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심야책방과 거의 같은 결의 시도였다고 그는 부연했다). 다만 본인이 직접 나서서 사람을 모으고 프로그램을 조직할 자신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공간은 얼마든지 내어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실제로 그는 단골 중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모임을 하려면 해도 좋다, 자리는 내가 제공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사장님은 대관비보다는 꼭 사례를 하겠다면 모임에서 다룰 책을 서점에서 사주면 된다고 답했다. 이 지점에서 참가자들 사이에 짧은 아이디어 교환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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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도서 상생 모델: 도서관 이용자가 희망도서를 신청하면, 도서관이 그 책을 지역 서점(에덴서점)에서 구입해주는 방식. 참가자 중 한 명이 이를 제안했으나, 곧바로 "왜 안 되는지 아시잖아요"라는 반응과 함께 웃으며 넘어갔다 — 예산·행정 절차상의 현실적 장벽이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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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코너: 사장님이 책을 워낙 많이 읽었으니, 도서관과 연계해 '서점 사장님 추천도서' 코너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나왔다. 사장님은 요즘은 노안 때문에 책을 예전만큼 읽지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큰 틀에서는 부정적이지 않았다.
이 짧은 대화는 이번 실험이 단순한 인터뷰 채록을 넘어, 실제로 도서관-서점-주민을 잇는 협력 모델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물론 아직은 구체적 실행 계획이 아니라 현장에서 오간 가벼운 제안 수준이지만, 사장님이 공간 개방에 선뜻 동의했다는 사실 자체는 후속 기획을 위한 실마리로 기록해둘 만하다.
5부. 참여자 질의응답 전문 정리
이날 인터뷰는 정식 1:1 인터뷰가 아니라, 여러 참가자가 돌아가며 질문하는 즉흥 실습 형태로 진행되었다. 아래는 질문자별로 정리한 주요 질의응답이다.
Q1. (리빙랩 활동가) - 서가 앞쪽에 진열된 『오만과 편견』, 『데미안』 등을 특별히 세워둔 이유가 있는지, 양천구민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는지.
→ 특별한 의도가 있는 배치는 아니며, 책이 부족해 생긴 결과다. 추천하고 싶은 책은 많지만 당장 떠오르는 특정 제목보다는, 감동을 준 여러 책들이 있다고 답했다.
Q2. (개인 도서관 설립을 꿈꾸는 참가자) - 44년을 이어오며 외로운 순간이 있었는지.
→ 외롭지 않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돈으로 따지면 진작 접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개인 도서관 창업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수익 모델이 없다는 점에서 서점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냈다("도서관보다 서점이 낫지, 일도 창출하면서").
Q3. (국책연구기관 근무자, 부산 출신) - 하루 일과, 책 섹션 배치의 시대별 변화, 학생 손님을 위한 진열 전략.
→ 처음 자리 잡은 이후 서가 배치는 거의 바뀐 적이 없다. 이 질문을 계기로 IMF·코로나 시기의 매출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Q4. (경영학 전공 참가자, 양천구 10년 거주) - 건물주가 아니라면 힘들지 않은지,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
→ 건물주가 아니라는 점을 언급하자 사장님은 그 질문의 취지를 되물으며 웃었다. 이어 부인과의 일화("둘이 멀뚱멀뚱 보고 있는 것보다 여기 나오는 게 낫다")를 전하며 서점이 부부에게도 각자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공간임을 시사했다.
Q5. (양천구 주민, 전자책 애용자) - 전자책에 대한 서점 주인의 생각, 그리고 서점에서 독서 토론 모임을 열어보는 것에 대한 의견.
→ 앞서 정리한 대로 전자책의 편리함과 서점업 위축을 동시에 인정했으며, 독서 모임에 대해서는 공간 제공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Q6. (인근 다른 서점 운영자)-— 공간 제약으로 인한 현실적 어려움, 다른 지역의 '꿈의 서점' 사례(정기 독서 토론을 운영하는 서점) 소개, 자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경험 공유.
→ 비슷한 처지의 서점 운영자 간 공감대 확인.결혼 당시 계획했던 은퇴 후 세계여행의 꿈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다는 개인적 소회를 밝혔다.
Q7. (참가자, 서점 대표의 하루 루틴과 서점의 미래 역할, 실전 팁 요청) — 책 진열 노하우, 좋은 책을 감별하는 팁.
→ 책에 대한 호오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전제를 분명히 한 뒤, 본인이 특히 좋아했던 책으로 『어린 왕자』,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를 꼽았다. 다만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바뀐다"는 단서를 달았다.
Q8. (마지막 질문) — 대표님의 꿈은 무엇인가.
→ 앞서 정리한 대로, 88세까지 정신이 온전한 채로 지내다 서점을 스스로 정리하고 조용히 떠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6부. 이 실험이 놓인 자리 — 양천구 도서관 생태계와 리빙랩의 흐름
양천구의 도서관들
양천문화재단이 운영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구립도서관은 양천중앙도서관을 포함해 갈산도서관, 개울건강도서관, 목마교육도서관, 미감도서관, 방아다리문학도서관, 신월음악도서관, 영어특성화도서관, 해맞이역사도서관 등 9개관이며, 여기에 서울시교육청 산하 양천도서관과 다수의 작은도서관·스마트도서관이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다. 각 도서관이 건강, 음악, 문학, 역사 등 특화 주제를 갖고 있다는 점은 이번 "지역서점 이야기 수집"이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도서관 네트워크 전체가 지역 콘텐츠를 축적해가는 흐름 속 한 조각임을 보여준다.
도서관 리빙랩, 세계는 어떻게 하고 있나
이번 실험을 조금 더 큰 좌표 위에 놓아보면, 도서관이 정보 제공 기관을 넘어 시민 참여형 혁신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흐름은 국내외에서 이미 뚜렷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 산트 쿠가트 델 바예스의 미겔 바틀로리 공공도서관(L3, Library Living Lab)은 지자체·대학·연구기관·주민협회가 결합한 4중 나선 거버넌스로, 기술 기반 사회혁신을 실험하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운영된다. 시민 참여 구조를 알파부터 델타까지 네 단계로 나눠 전문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확보한 점, 그리고 초기 실험이 227개 도서관을 아우르는 '비블리오랩' 프로그램으로 제도화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의 느티나무도서관(용인)은 정반대 결에서 출발했다. 민간 자립형 도서관으로 시작해 '지식의 동사화'라는 개념 아래, 컬렉션 버스킹(이동형 지식 플랫폼), 낭독회(참여형 독서 모임), 모꼬지(마을 포럼형 공론장), 물음표와 쉼표(메이커스페이스)를 운영하며 지역 문제 해결의 실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양천중앙도서관의 "지역서점 이야기 수집" 실험을 이 두 사례와 나란히 놓으면 그 성격이 더 선명해진다. 기술 실험 중심의 L3보다는, 생활 밀착형 구술·기록 활동으로 지역 서사를 축적하는 느티나무도서관 쪽에 훨씬 가깝다. 다만 느티나무가 오랜 시간 축적한 조직적 협력 네트워크(용인마을공동체지원센터, 지역 기업, 청년단체 등)에 비하면, 양천구의 시도는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단계다. 이날의 어수선한 실습—사전 준비 부족, 즉흥적 인터뷰 배정, 참가자 간 역할 미분화—은 오히려 초기 리빙랩 실험이 흔히 거치는 성장통에 가깝다.
에필로그: 왜 이런 기록이 남아야 하는가
에덴서점 사장님의 이야기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63개에서 13개로 줄어든 서점의 숫자, 전자책 앞에서 흔들리던 서점 주인의 마음, 44년째 새벽 3시에 일어나 운동하는 루틴 — 이 낱낱의 조각들이 쌓이면 한 지역이 지나온 시간의 결이 된다.
양천구립도서관 리빙랩이 시도하는 지역서점 아카이빙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방향은 옳다. 사라져가는 것을 기록하는 일,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 주민이 스스로 마을의 관찰자이자 기록자가 되는 경험 — 이것이야말로 "거창한 연구소가 아니라 우리 동네 일상 속 실험실"이라는 도서관 리빙랩의 원래 취지에 가장 가까운 실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