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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컬럼 26호] 예산은 늘어나는데, 고통은 왜 그대로일

지난해 국가 치매관리비용은 23조 원에 이르렀다. GDP의 1%에 육박하고, 국방비의 40%에 맞먹는 규모다. 그런데 이 돈이 향하는 곳에서, 가족의 45.8%는 여전히 돌봄이 버겁다고 말한다. 그 가족들의 우울 수준은 일반인의 두 배다. 예산은 계속 늘어나는데, 정작 현장의 고통은 줄지 않는다.
데이비드 보일과 마이클 해리스는 2009년 논문에서 이 역설의 구조를 짚었다. 복지 서비스는 당사자를 '욕구 덩어리(bundle of need)'로 규정하고, 그 욕구를 채우는 데만 급급해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방식이 당사자를 수동적인 수혜자로 만든다는 데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던 것들까지 내려놓게 되고, 그럴수록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커진다. 저자들은 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수요(manufactured demand)'라 불렀다. 근본 원인을 예방하는 데 실패한 자리에, 자꾸만 미봉책(patching)이 덧대어지는 구조다. 예산을 늘려도 관리비용이 함께 늘어나는 지금의 흐름과 겹친다.
진짜 답은 문제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전문가가 아니라, 문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소리 없는 경보일 수 있고, 손을 쓰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플라스틱 빨대 전면 금지가 오히려 일상을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지식은 당사자가 아니면 갖기 어렵다. 영국은 이 지식을 이미 자원화했다. 'Expert Patient', 소위 경험전문가(lived experience expert) 프로그램이다. 만성질환을 오래 겪은 환자가 다른 환자를 가르치도록 했고, 5만 명이 참여했다. 그 결과 병원 방문이 줄고 비용이 절감됐다. 경험이 지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숫자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행정은 당사자의 지식을 자원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보일과 해리스는 사람들을 '자산'으로 보는 순간 서비스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반, 그들은 이를 '핵심 경제(core economy)'라 불렀다. 공식 서비스는 이 기반 위에서 작동하면서도, 정작 이 기반을 키우는 데는 무심하다.
리빙랩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리빙랩은 기술을 시험하는 곳이 아니라, 이 핵심 경제를 다시 세우는 곳이어야 한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관계와 역량으로 미리 막아내는 '업스트림' 개입이다. 그런데 국내 다수 리빙랩은 단기 과제 예산과 실적 지표에 묶여 있다. 예방적 개입은 효과를 숫자로 증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예산이 빠듯해지면 가장 먼저 잘려나간다. 결국 눈앞의 성과부터 챙기는 옛 방식으로 되돌아간다.
당사자의 제안이 정책 홍보나 실적 자료로만 쓰이는 참여는, 지식을 공짜로 꺼내어 쓰는 '추출(extraction)', 사실상 착취에 가깝다. 보일과 해리스는 예방 투자의 이익은 종종 투자한 부서가 아니라 다른 부서의 예산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그러니 누구도 먼저 나서 투자하지 않는다. 2006년 런던 캠던구는 정신건강 데이케어 서비스를 발주하며, 입찰 조건에 아예 '당사자의 경험을 전문성과 동등하게 인정하고 함께 설계할 것'을 명시했다. 제도의 언어 안에 당사자의 지식을 새겨 넣은 드문 사례다.
당사자의 실천적 지식이 정말 예방 효과를 내려면, 이런 사례처럼 지식이 부서 간 칸막이를 넘어 예산과 행정의 언어로 옮겨지는 통로가 필요하다. 나는 이걸 '제도적 번역 경로'라 부르고 싶다. 돌봄이 돈을 쓰는 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자원이 되는 건, 이 통로가 뚫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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