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과 다음학기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제주에 있는 삼달다방에서 <집중연구주간>을 가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제주=삼달다방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삼달다방 문화동에서 게스트들과 아침을 먹고 있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한 중년 남성이 이곳에 오니 예전 추억이 떠오르고, 분위기가 참 좋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도 좋다고 했다. 과자 관련 사업을 한다는 그는 앞으로 매달 과자를 두 박스씩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곳에서 더 많은 이들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그 마음이 무엇인지, 나는 알 것 같았다. 그건 아마 '이바쇼(居場所)'를 느낀 사람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바쇼는 일본어로 직역하면 '있는 장소'다. 그런데 이 말은 물리적인 위치보다 소속감과 안정감을 가리킬 때 더 많이 쓰인다. 학계에서는 이를 '장소안도감'이라 부른다. 노년학 연구자들은 장소안도감을 물리적·개인적·사회적으로 안심하고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하고, 이를 측정하는 척도(K-SIS)를 통해 생활만족도를 높이는 핵심 변수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느낌, 기분, 감정, 정동이 모두 담긴다.
이바쇼로 꼽히는 곳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문턱이 낮아 누구나 드나들 수 있고, 특별한 이유나 자격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삼달다방은 딱 그런 장소이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누구도 직함이나 이곳에 온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그냥 함께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을 뿐이다.
여기서 '장소(place)'와 '공간(space)'은 다르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1977년 저서 『공간과 장소』에서 이 둘을 명확히 구분했다. 공간은 우리가 움직이며 지나가는 곳이고, 장소는 머무는 곳이다. 공간에 우리의 경험과 감정이 녹아들고, 그곳에 의미와 가치가 부여될 때, 비로소 그 공간은 장소로 발전한다. 투안은 이렇게 생긴 정서적 유대감을 '장소애(場所愛)'라 불렀다. 삼달다방은 처음엔 누군가에게 그저 건물과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머물다 보면, 그 공간은 어느새 장소가 된다.
삼달다방을 만든 무심(이상엽)과 오케이(박옥순)는 장애인 인권 분야의 활동가였다. 은퇴 후, 장애인도 마음 편히 여행할 수 있는 곳, 활동가들이 쉬고 문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을 제주에 직접 지었다. 무심은 생활이 고립되고 경험이 빈곤해지면 감각이 예민해지고 감정이 급격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건 장애인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원칙이라고. 고립과 빈곤한 경험은 누구의 건강이든 나빠지게 한다고. 삼달다방은 처음부터 이바쇼가 되려고 지어진 곳이었다.
오늘 아침 그 남성의 과자 두 박스는, 그가 이곳에서 받은 안도감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바쇼는 받은 사람이 다시 내어주고 싶어지는 곳이라는 걸, 그 장면이 보여주었다.
나에게도 삼달다방은 그런 곳이다. 몇 년 전, 어려움을 겪던 아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이곳에 보냈다. 그것이 삼달다방과 나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이곳은 내게도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곳이 나뿐만 아니라 이바쇼가 필요한 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이바쇼가 될 수 있도록, 나도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좀 더 깊은 마음이 생겼다. 앞으로 이 관계를 어떻게 가꾸어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곳은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장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