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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컬럼 29호] 오늘 제가 더 커진 것 같아요 - 부천에서 피어난 돌봄민주주의

"오늘 제가 더 커진 것 같아요."
2025년9월, 부천대학교 한길체육관에서 열린 ‘부천시민 100인 치매돌봄리빙랩’ 워크숍 현장. 부천대 학생 50명, 부천 시민 50명 총 100명이 참여한 자리였다. 대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 동네의 치매 돌봄 안전망을 기획하던 한 주민 참여자가 던진 이 짧은 소감은 현장에 있던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렸다. 단순히 강의를 듣거나 일방적인 복지 혜택을 받는 수혜자가 아니라, 동네의 미래를 바꾸는 주체적인 기획자로 거듭난 순간의 전율이 이 한마디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고백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놓치고 있었던 시민 참여의 가치와 돌봄의 본질을 새로 쓰게 만든다.
그동안 한국의 돌봄이나 보건의료 정책에서 일반 시민이나 환자의 가족은 주로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수령하는 수동적 존재에 머물러 왔다.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늘 전문가들의 몫이었고, 시민들은 가끔 만족도 조사나 공청회라는 이름의 형식적인 '의견 수렴'에 동원되어 들러리를 서는 데 그치곤 했다. 의견을 내도 실제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형식을 경험하며 시민들은 도리어 무력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작게 여기게 된다. 하지만 부천의 실험은 달랐다. 주민들은 단순한 정보 수혜자를 넘어 동네 골목의 안전망을 함께 설계하는 ‘공동 기획자’로 환대받았다. 내 손으로 이웃을 지키는 대안을 직접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주민은 비로소 "내가 더 커졌다"는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치 역량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학술적으로 이러한 장면은 김송이(2025) 교수의 연구가 강조한 ‘돌봄민주주의’와 ‘다자적 돌봄거버넌스’가 현실에서 생생하게 구현된 결과다. 돌봄은 ‘환자-의사’나 ‘이용자-공급자’라는 좁은 1:1 양자 관계에만 갇혀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돌봄은 본질적으로 개인이나 한 가정의 사적 비극이 아니라, 국가와 지역사회, 시민이 함께 책임을 나누는 공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김송이(2025)는 조안 트론토(Joan Tronto)의 논의를 빌려, 단순히 돌봄을 잘 받을 권리를 넘어 "돌봄의 공적 분배 과정을 결정하는 의사결정에 시민이 주체로 참여하는 세 번째 돌봄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부천의 리빙랩은 체육관이라는 일상의 생활 공간(미시적 돌봄정치)에서 주민들이 이 세 번째 돌봄권을 주도적으로 연습하고 실현하는 훌륭한 교실이 되어주었다.
실천적 의미 또한 묵직하다. 이 워크숍은 부천시 보건소, 대학, 의료사회협동조합, 치매안심센터, 기업 등 지역의 다자간 주체들이 기획부터 실행까지 수평적으로 협력해 냈다. 이는 풀뿌리 주민 참여 실험이 국가의 거시적 법제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다층적 연계 거버넌스의 선행 모델을 제시한다. 주민이 스스로 "내가 더 커졌다"고 느낄 만큼 주체성이 살아날 때, 그들이 만들어내는 돌봄 안전망은 그 어떤 정교한 법률보다 단단하고 지속 가능하다. 부천이 보여준 상상 실험이, 돌봄을 고립에서 연대로 바꾸는 돌봄민주주의의 따뜻한 이정표가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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