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치매생태계세미나’는 네덜란드의 치매 마을 ‘더 호그벡(The Hogeweyk)’을 통해 우리 사회의 돌봄 철학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부천대학교 김형선 교수의 방문기를 통해 접한 호그벡의 모습은 단순히 ‘치매 환자를 위한 좋은 시설’을 넘어,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해방(Emancipation)’의 공간적 실천 그 자체였다. 호그벡이 내세운 7가지 기둥 중 가장 핵심적인 가치인 ‘사회적 포용과 해방’은 치매라는 진단명 아래 가두어 두었던 치매당사자들의 시민권을 복원하는 것에 집중한다.
비판적 노인교육론(CEG)의 관점에서 교육과 돌봄의 궁극적 목표는 ‘해방(Emancipation)’이다. 이는 노년을 쇠퇴기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노년기의 사회적·정치적 권리를 명확히 밝혀내는 과정(Illuminate)을 의미한다. 호그벡은 이러한 해방을 ‘시설에서 동네로’라는 모델의 전환을 통해 구체화한다. 그들은 당사자를 ‘보호받아야 할 환자’로 규정하는 의료적 통제라는 상징폭력(Symbolic Violence)을 거부한다. 유니폼을 입지 않은 직원들과 평범한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는 당사자가 스스로를 수동적인 수혜자가 아닌, 일상을 영위하는 주체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는 노인 안에 억눌려 있던 주체적 생명력을 복원하려는 활력화(Empowerment)의 과정이다.
호그벡이 보여주는 해방의 두 번째 층위는 ‘개인적 선택권(Personal Choice)’의 존중이다. 호플랜드(Hofland, 1994)는 사소한 선택권을 당사자에게 돌려주는 환경적 변화가 진정한 활력화를 이끈다고 강조했다. 호그벡은 입주민의 과거 삶의 방식을 4가지 라이프스타일(Urban, Cosmopolitan, Formal, Traditional)로 세밀하게 구분하여 제공한다. 이는 당사자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결정성 지능(Crystallised Intelligence)과 삶의 숙련도를 존중하는 것이며, 치매가 와도 ‘나다운 삶’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 고도의 배려다.
가장 인상적인 해방의 지점은 ‘관리 가능한 위험(Calculated Risk)’의 수용이다. 기존의 돌봄 시스템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노인의 행동을 제약했다면, 호그벡은 자율성을 위해 사고의 가능성이라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스스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혼자 산책하며, 슈퍼마켓에서 카트를 밀며 장을 보는 행위는 인지의 기계적 속도(Mechanics)는 느려졌을지언정,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는 강력한 해방의 증거가 된다.
결국 호그벡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치매 당사자를 동등한 시민으로 포용할 준비가 되었는가?”이다. 세미나에서 논의된 것처럼, 대규모 마을 조성이라는 하드웨어의 복제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견지한 인본주의적 철학의 전수다. 당사자를 돌봄의 대상에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경험전문가(Expert by Experience)로 세우고, 그들의 목소리를 사회적 권리로 조명할 때, 우리 지역사회는 비로소 통제를 넘어선 해방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