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함께하는 사람으로 - MCI(경도인지장애) 노인일자리, 이제 제도화를 이야기할 때다
2026년 9월 18일, 은평구청 은평홀에서 '건강이웃'과 함께 만들어가는 나이 들고 싶은 마을 — 살림 건강이웃 성과공유회 및 MCI(경도인지장애) 노인일자리 시범사업 성과공유회가 열렸다. 은평구 어르신복지과, 한국노인인력개발원, 한국에자이, 은평구 치매안심센터, 그리고 130명의 건강이웃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글은 그날의 기록이자, 정책의 제안이다. MCI(경도인지장애)를 가진 사람이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지역사회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지난 5개월이 데이터와 목소리로 보여주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공적 일자리 체계는 치매 진단을 받는 순간 그 사람의 자리를 지운다. 이 글은 그 구조 한가운데에, MCI 당사자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심어야 한다고 말하려 한다.
1부. 씨앗을 심은 자리 — 건강이웃이라는 토양
노래로 열린 자리
행사는 건강이웃 중창단의 오프닝 공연으로 문을 열었다. 건강이웃 선생님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로 시작을 알린 것 자체가, 이 자리가 누군가를 초대해 보여주는 발표회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온 것을 스스로 나누는 자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어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최순옥(아띠) 이사장이 개회사를 맡아 참석한 내빈과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작년에 이어서 오랫동안 건강이웃을 하고 있는, 함께 만드는 자리라는 점을 잘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며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사이임팩트, 한국에자이, 은평구 치매안심센터, 역촌노인복지관 등 함께한 기관들을 하나하나 소개한 뒤, "즐기고 나누고 누리고 또 공부하는 학습의 장이 함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말로 환영 인사를 대신했다.
행사 전체 진행을 맡은 민혜란 팀장은 이렇게 자리를 열었다. "저희가 건강이웃 사업 그리고 MCI 사업을 하면서, 정말 저희가 깊이 들어가서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현장에서 매일매일 여러 어려움을 오가지만, 전국에서 우리 같은 곳은 없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선생님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이어 그날의 순서를 1부와 2부로 나누어 소개하며 본격적인 발표를 시작했다.
노인일자리의 '노인'은 없었다
살림 건강이웃 사업은 치열한 면접을 통과한 130명의 건강이웃 선생님들이 어르신 가정을 직접 방문해 운동과 인지활동을 지원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이다. 올해 새롭게 이 사업을 담당하게 된 권경임 담당자의 소감이 그 특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저는 지난 5월에 여기 처음 왔다. 첫 번째는, 수요 과정을 직접 발로 뛰어 발굴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의심했는데, 실제로 되고 있었다. 두 번째는, 분명히 '노인 일자리'라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가지고 있던 '노인'의 이미지는 없었다. 본인의 역량을 가지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활동하고 계셨다."
— 권경임, 건강이웃 담당자
권경임 담당자는 처음 의심했던 두 가지가 시간이 지나며 해소됐다고 했다. "선생님들에게 '하면 된다, 하고자 하면 된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림과 함께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사는 구에는 이런 사업이 없어 아쉬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편찮으신 부모님께 소개하고 싶었는데 이 사업이 없어서 아쉬웠다"는 이 한마디가, 이 사업이 왜 은평구 한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건강이웃 선생님들은 은평구 16개 전 지역, 10곳의 지역 거점(복지관, 도서관, 예술창작소, 주민센터 등)을 통해 활동한다. 가정방문을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점을 이용한다. 매주 얼굴을 보고 집으로 직접 찾아가기 때문에, 단순한 프로그램 참여자가 아니라 그 가정의 상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아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이 사업은 운동 지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어떤 욕구가 있는지를 살피고, 팀 사례회의를 통해 지역의 자원 - 살림재택의료센터, 소소한 주택수리, 집안 정리정돈, 반찬·식사 배달 지원, 정서지원 연결 - 로 이어준다. 8개 팀은 매주 금요일 팀 회의를, 월 1회 전체 회의를 열어 수요자의 변화와 어려움을 공유하고, 발굴의 노하우와 거점 운영의 노하우를 나누며 서로의 활동을 검토한다.
숫자로 본 상반기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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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가정 365가구 (이웃 발굴 포함 554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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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지도 횟수 7,7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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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거점 10곳, 실인원 263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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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가정·거점참여자 전원 대상 건강측정(인바디·악력·청력) 실시 — 청력저하 신규 발굴 5명 (청력저하는 치매 발생 위험요인 1위이자, 방치 시 치매 발생률이 2~3배 높아지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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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 만족도 96.2%, 건강유지·개선 도움 92.6%, 사업 지속 이용 의향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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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도움이 되는 활동은 관절가동·근력운동(89.6%), 인지활동(47.6%), 인사 및 안부확인(33.6%), 건강측정(21.1%), 건강체크(20.9%) 순이었다
지속 이용 의향이 100%에 이르지 못한 이유도 권경임 담당자는 짚었다. 오전 시간대 운영이 많다 보니 오후를 원하는 일부 수요자의 욕구를 다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은 숫자 하나까지 어디서 오는지를 스스로 되짚어보는 태도가 이 사업의 결을 보여준다.
이 활동 하나하나가 실은 지난 7월 WHO가 새로 발표한 「인지저하 및 치매 위험 감소 가이드라인(2판)」이 강조한 다영역 복합중재(multidomain intervention) — 신체활동·인지활동·사회활동·건강관리를 동시에 제공했을 때 인지저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권고 — 와 정확히 겹친다. WHO는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교정 가능한 위험요인 관리를 통해 치매 위험의 최대 45%를 예방하거나 지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건강이웃은 그 다영역 개입을 이미 매주, 가정과 거점에서 현실로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손편지 한 장
권경임 담당자가 발표 당일 아침 받았다는 손편지도 소개됐다. 불광동에 사는 한 어르신이 눈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손수 써서 전한 편지였다.
"올해 가장 더운 날씨에 공사하느라 많이 고생하셨다. (…) 이제는 고생이라 생각 안 하고 봉사라 생각하시고, 건강이웃에 계신 천사이신 선생님들이 감사하다. 사랑한다. 며칠 있으면 추석인데 모두 행복하게 지내시고, 추석 지나고 반갑고 사랑스럽게 만나자."
숫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이야기들이 매 회의마다 사례로 공유된다는 말과 함께, 권경임 담당자의 경과 보고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축하공연 - 93세 강용순 어르신의 무대
경과 보고에 이어, 1부 두 번째 순서로 축하공연이 마련됐다. 무대에 오른 93세의 강용순 어르신은 지난해부터 건강이웃 선생님들이 꾸준히 방문해온 수요가정의 어르신으로, 오르기 전 인사말부터 힘이 넘쳤다. "이렇게 노래도 할 줄 모르는데 이렇게 큰 무대를 지켜줘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겸손하게 운을 뗀 뒤,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트로트 한 곡을 완창했다. 93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박자와 흥을 놓치지 않는 무대였고,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라는 후렴구를 부를 때는 객석에서 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노래를 마친 뒤에도 "계속해서 건강하세요, 사랑해요"라며 객석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여유까지 보였다. 진행을 맡은 민혜란 팀장은 "뒤에서 혼자 울컥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이 아니라, 여전히 그 자리에서 힘과 열정으로 노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 한 곡이 말해주고 있었다.
가정방문 현장 - "처음엔 하반신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셨어요"
8팀 정기숙·함순례 건강이웃 선생님이 전한 김금남 어르신(79세)의 이야기는 이 사업이 숫자로 다 담을 수 없는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르신은 8년 전 의료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얻었고, 이후 뇌졸중까지 겹쳐 발음도 어눌해진 상태였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왼발을 거의 움직이지 못했고, 연필로 줄을 긋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처음엔 하반신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셨다. 이 운동을 하면 정말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하셨다."
의심 속에서도 운동을 지속하도록 격려하기를 거듭한 끝에, 장맛비가 내리던 어느 날 박은미 관장이 수업 참관을 왔을 때, 어르신은 이를 악물고 왼발을 조금씩 들어올렸다. 그 순간을 지켜본 선생님들은 함께 환호했다. 이후 어르신은 매번 조금씩 왼발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손 저림으로 통증을 호소하자 선생님들은 살림한의원의 방문진료 프로그램으로 연계해드렸다. 지금은 매주 방문 때마다 어르신이 몸단장을 하고 두 손을 꼭 잡으며 기다린다고 했다.
거점활동 현장 - 대조동 꿈나무 어린이도서관이 '우리 도서관'이 되기까지
이날 발표 중 가장 오래 곱씹게 되는 이야기는 5팀 이춘희·박진희 건강이웃 선생님이 전한 대조동 꿈나무 어린이도서관의 2년이었다. 처음엔 노인이 발을 들이기 어려운 공간이었던 어린이도서관이, 어떻게 지역의 돌봄 거점으로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춘희 선생님은 발표를 지난해 이 거점에서 먼저 활동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로 열었다. "선생님들께서 열심히 활동해주셨기 덕분에 어르신들이 함께 운동하고 만날 수 있는 관계의 씨앗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이 거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목표를 이렇게 설명했다. 건강이웃 활동뿐 아니라, 이 좋은 공간을 어르신들에게 내주고 마음을 써준 꿈나무 어린이도서관 자체에도 도움이 되는 것. "우리 동네에 이런 좋은 공간이 있다는 것을 어르신들은 모르신다. 그건 나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라고 생각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돌봄 거점 공간에서 만나는 활동이 반복되면서, '나와 관계없는 곳'이 이제는 '우리 도서관,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이곳'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은 이 2년의 변화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몸의 변화다. 세 차례에 걸친 인바디 측정에서 어르신들의 체지방과 내장지방은 꾸준히 줄고, 골격근량은 늘었다. 다른 곳에서도 운동을 하시는 어르신들이지만, "여기서는 늘 천천히 우리가 따라갈 수 있게 설명해주면서 안내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어떤 근육을, 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한 분 한 분 짚어드리며 운동하다 보니, 서늘한 늦여름 날씨에도 에어컨을 틀어야 할 만큼 다들 흠뻑 땀을 흘리신다.
둘째, 노년의 특징을 살린 인지활동이다. 그림책, 감정카드, 속담 퀴즈 등을 매개로 읽고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처음엔 "나는 할 얘기 없어"라며 입을 다물던 어르신들이, 그림책 속 한 장면이 나오는 순간 "나도 어릴 때 이런 일이 있었어"라며 저마다의 어린 시절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서로 이야기하고 싶어 순서를 정해드려야 할 정도로, 어르신들은 당신들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았다. 이춘희 선생님은 이 활동이 때로는 "은평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 - 어르신이 프로그램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그동안 쌓아온 재능을 풀어내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흥이 오른 어르신들의 춤사위가 즉석 공연장을 만들기도 하고, 종이접기에 능한 어르신이 그날의 '일일 강사'가 되어 다른 어르신들에게 생활 소품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작은 잔칫상이 펼쳐진다.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하게 되면 "함께 활동하는 이웃들, 선생님들, 도서관 관장님이 생각나서" 반찬 통에 담아 오시는 것이다. 손주나 자녀가 사다 준 음식도 혼자 드시지 않고 도서관으로 들고 오신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잔칫상 앞에서 어르신들은 말씀하신다. "나는 수요일이 제일 기다려져. 여기 오면 늘 재미나고 신나."
건강이웃 활동이 만들어낸 가장 큰 변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처음엔 "우리가 여기 들어가도 되나?"라고 조심스레 묻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수요일이 아니어도 지나가는 길에 들러 책을 빌리고, 맛있는 게 생기면 나눠주고 가신다. 도서관은 더 이상 '거점 공간'에 머물지 않고, 운동하러 왔던 이들이 서로의 삶을 살아가는 '이웃'이 되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변화를 도서관 안에서 지켜본 최정숙 관장의 말은 더 구체적이었다.
"저희 도서관은 올해로 2년 차 건강이웃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도서관은 어르신들한테 취약계층에 속한다. 들어오시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신다. 그래서 운동을 계기로 어르신들이 도서관에 오시면 좋겠다 해서 시작했는데, 결과는 엄청났다. 단순히 신체적으로 건강해지는 걸 넘어 정서적으로 너무 달라지신다. 어떤 분은 '나는 우울증이 와서 못 나오겠어' 하셨는데, 활동을 하면서 친구도 만나고 우울증도 사라지고 식욕도 높아지셨다고 하더라. 일주일에 한 번, 두세 시간 만나는 게 전부인데 실제로 그 사람들이 가꿔지는 게 보인다. 아침에 파전을 부치면 저희한테 먼저 갖다주려고 들고 오시고, 그런 정이 넘쳐난다. 얼마 전엔 이춘희 선생님이 살림한의원을 소개해주셔서 운동 끝나고 모시고 다녀오셨는데, 그 다음엔 다른 어르신이 오셔서 '나 살림 치과 갔는데' 하며 먼저 물어보시더라. 당신의 몸을 더 챙기시고 관심을 가지시게 된 거다. 그리고 작년까진 몰랐는데, 올해 들어 어르신들이 도서관을 들락날락하시니까 다른 어르신들이 도서관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졌다. 예전엔 제가 몇 년을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해도 절대 안 들어오셨는데, 지금은 '나도 들어가도 되나 봐, 여기 뭐 하는 곳이야?' 하면서 실제로 들어오신다. 이게 1대1 가정방문에도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저희처럼 다양한 기관을 방문하면 그 안에서 관계 형성이 더 확장되고 그 관계가 마을로 퍼져나가는 것 같다. 기관들을 좀 더 지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
- 최정숙, 대조동 꿈나무 어린이도서관 관장
도서관 이야기 뒤에 이어진 역촌노인복지관 배성철 팀장의 발언은, 같은 현상이 다른 유형의 기관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역촌노인복지관은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 약 180명에게 도시락·밑반찬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저희는 도시락·밑반찬 배달 서비스를 어르신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식사하러 오시는 분들은 복지관에 직접 오시는데, 1층에서 건강이웃 선생님이 활동을 해주시면 로비가 활기차진다. 저희 기본적으로 취약계층 어르신들은 스탠스가 수동적이다. 뭔가 건드려주고 이끌어야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건강이웃 선생님이 상당히 잘 건드려주신다. 어르신들이 교류감도 갖고 소속감도 갖고, 일석이조로 건강도 챙겨주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시락·밑반찬 이용 어르신들은 대부분 거동이 어려운데, 매주 가정방문을 해주시니 반응이 정말 좋다. 감사해하시고, 운동해주는 것에도 감사해하시고, 기본적으로 사람이 찾아와서 '고맙다, 반갑다'는 의미가 크다. 결국 요즘 복지 트렌드가 '통합돌봄' -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서비스를 받는 것 - 으로 가고 있는데, 건강이웃의 목표와 모델이 여기에 정확히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 복지관도 이 모델을 벤치마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오게 됐다."
- 배성철, 여천노인복지관 팀장
도서관, 노인복지관, 가정 — 형태는 저마다 다르지만 같은 원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운동이라는 입구로 들어온 사람들이 그 공간의 '이용자'에서 '관계를 맺는 이웃'으로, 그리고 결국 그 공간을 함께 지켜가는 '돌봄의 주체'로 옮겨가는 것이다. 최정숙 관장의 말대로, 도서관 하나가 마을 안에서 돌봄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2년은 보여주었다.
이 토양 위에, 올해 5월 새로운 씨앗이 심겼다. 바로 MCI(경도인지장애) 건강이웃이다.
2부. MCI(경도인지장애) 건강이웃 — 올해의 도전
사업의 출발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한국에자이는 2026년 3월, "경도인지장애 노인을 단순 보호 대상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돌봄 주체로 세운다"는 목표 아래 업무협약을 맺었다. 민간기업(한국에자이)이 사업비를 후원하고 공공기관(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예산과 운영을 지원하는 구조로, 보건복지부의 '노인역량활용 선도모델' 유형 아래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간 시범 운영되었다. 올해 시범운영 성과를 평가한 뒤 내년도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계획이다.
방식은 단순하지만 정교했다. 기존 건강이웃 선생님(이웃돌봄팀) 한 명과 MCI 진단을 받은 참여자 한 명이 2인 1조를 이루어, 매주 함께 가정을 방문하고 거점 활동과 사회관계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8개 팀, 총 10쌍이 참여했다. 권경임 담당자는 이 사업을 시작하며 두려워하던 이들에게 세 가지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첫째, 몸이 건강해지고 인지 활동도 좋아진다. 둘째,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 셋째, 다른 사람에게 건강이 향상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스스로 '1석 3조의 사업'이라 부른 이유다.
당사자의 목소리 - "선생님이 아니라 동료였다"
이날 가장 긴 시간, 가장 큰 울림을 준 순서는 MCI 건강이웃 참여자 본인의 발표였다. 발표자는 스스로를 "70세인 아기"라 부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도인지장애 검사를 받았을 때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약속을 잘 잊어버려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자존심에 검사를 미루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며 집에서만 지내다 보니 발음도 어눌해지고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MCI 일자리라고 해서 치매센터에서 교육을 받는 도중 살림 건강이웃으로 보내져,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처음엔 힘들고 짜증스러웠다고 했다. 책을 읽고 줄거리를 써오라는 숙제, 안 쓰던 글씨를 다시 쓰는 일. 카메라로 사진 한 장 찍는데도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달라졌다.
"표정도 밝아지고 생기가 돌고, 처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과 환경이 이렇게도 사람을 달라지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가정방문에서 만난 한 수요자의 이야기도 전했다. 원래 복지관도 잘 다니고 인품도 좋았던 분이 무릎이 아파 걷지 못하게 되면서 집에만 있게 된 경우였다. 방문할 때마다 너무 좋아하며 "수요일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하는 그 모습을 보며, 발표자는 "선생님이 누군가에게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구나, 나도 도움을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엔 파트너 선생님에게 "왜 자꾸 이것저것 가르쳐주려 하느냐"는 욕심 어린 마음도 있었지만, 곧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이유는 제 학생이 아니라, 함께하는 동료잖아요. 그래서 저도 선생님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발표는 이렇게 맺어졌다.
"MCI라고 해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니다.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MCI나 치매가 있는 분들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만 보지 않고,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 우리 이웃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함께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법인운영팀 간호사 이세원은 이 사업의 기획 배경을 설명하며, 경증 치매 어르신이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예능 프로그램 「주문을 잊은 음식점」을 소개했다. 손님은 조금 더 기다려주고, 동료는 옆에서 한 번 더 알려주며, 당사자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낸다는 설정이다. 이 사업을 오래 준비해 온 살림과 에자이, 노인인력개발원이 함께 품어온 질문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인지 기능이 저하되더라도 우리가 평범한 삶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계속 해나갈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 동네가 함께 안심하고 나이 들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조금 더 안심하고 나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 고민은 WHO가 지난 7월 새롭게 발표한 치매 예방 가이드라인의 다영역 복합활동(신체·인지·사회·건강관리를 동시에 제공) 권고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발표자는 "저희가 어디서 많이 본 활동 같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주 1회 방문해 신체활동과 인지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매주 사례회의를 여는 건강이웃의 방식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데이터로 다시 본 5개월
사업 시작 시점과 종료 시점의 설문·인지기능 검사를 비교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MCI 참여자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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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이 감소했다. 사업 시작 전에는 "집에 있으면서 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답한 사람이 많았지만, 5개월 뒤 그 응답이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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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존중감이 상승했다. "나는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문항에서 상승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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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참여 수준이 상승했다. 단순히 활동 횟수가 늘어서가 아니라, 그 사회활동을 통해 기쁨을 느끼고 앞으로도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지를 묻는 문항에서도 상승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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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 척도 중 일상적 피로감을 묻는 항목은 소폭 하락했다. 담당자는 "집에서 쉬다가 매일 출근하면 힘든 게 당연하다. 어엿한 직장인이 되신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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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기능은 세 가지 검사(임상치매척도, 인지기능 선별평가, MoCA 몬트리올 인지평가)로 확인했다. 앞의 두 지표는 인지저하로 인한 일상생활 영향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개선됐다. MoCA는 평균 1.6점 상승했고(최소 1점, 최대 4.5점 상승 사례 포함), 세부 항목 중에서는 언어 유창성과 집중력의 향상이 가장 뚜렷했다. 담당자는 "매일 말할 일이 많아지는 활동 자체가 언어 유창성을 높였고, 직장인으로서 집중해서 해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집중력 향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풀이했다.
살림의원 주치의는 이 결과를 두고 "인지 기능이 좋아졌다고 좁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 누군가를 돌보는 전반적 기능이 함께 올랐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평했다. 사업 초반 진행한 상담회의에서 주치의는 이런 조언도 남겼다고 한다.
"이 일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계속해서 시도하게끔 자극을 주는 것 자체다. 그것이 바로 최고의 인지 훈련이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 함께 관계 맺고 있는 상황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울러 가면 좋겠다."
참여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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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스트레스가 줄었고, 돌봄 부담이 완화되었으며,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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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I에 대한 태도가 개선되었다. 진단 직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MCI를 잘 모르는데" 하던 막막함이, 함께하는 과정에서 "MCI라도 괜찮다"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이웃돌봄팀(파트너)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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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I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를 묻는 설문에서, 시작 시점보다 마무리 시점의 점수가 소폭이지만 전원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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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생님은 영상 인터뷰에서 "MCI라는 선입견을 지우고 나니까 더 많은 것들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발표자는 이 말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왜 이 결과가 중요한가
담당자는 이 변화의 배경을 세 가지로 짚었다. 첫째, MCI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 둘째, 이웃돌봄팀과의 관계가 처음의 '선임-신입' 구도에서 점차 '동료'로 옮겨간 환경. 셋째, 업무를 일률적으로 배정하지 않고 개인의 강점에 맞춰 사회복지사와 함께 매달 각자 수준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며 성취감을 쌓아간 방식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를 관통하는 결론은 하나였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지금은 이만큼이지만, MCI를 잘 알고 함께 이웃돌봄 파트너로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가 MCI라도 나답게 평범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바뀔 수 있다."
마지막 순서 - 함께 만든 사람들
성과공유회의 마지막 순서는 이 사업을 함께 설계하고 지탱해 온 기관 관계자들의 대화였다. 진행을 맡은 이사장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며 자리를 마련한 이유를 밝혔다. "저희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싶다는 뜻만 갖고는 될 수 없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지원과 협력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 토대를 함께 만드는 작업을 해주고 계신 분들이라, 오늘 시간을 내서 인사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싶어 모셨다." 한국에자이 안우석 부장, 사이임팩트 서정주 대표,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박은영 과장, 은평구 치매안심센터 유미숙 부센터장이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안우석 부장(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은 이 사업이 시작된 지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오늘 이 자리가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남다르게 다가온다. 건강이웃 일자리를 하시는 130분과 MCI를 가지고 계신 분이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저희가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할 때 마음에 품었던 그림이었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서울광역치매센터, 은평구치매안심센터와 이 사업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나왔던 질문이 있었다.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분들이 그 다음엔 어디로 가시나요?' 진단은 받았는데 아직 치매는 아니다 보니, 오히려 그 사이에서 방치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었다. 저희 에자이는 결국 지역에서 이런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고, 은평구의 이 일자리 모델도 그중 하나다. 저희가 진짜로 바라는 것은, 저희가 지원하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지역사회 내에서 지속적으로 경도인지장애 어르신들을 위한 지자체 조례나 노인일자리 모델로 자리를 잡는 것이다. 저희 같은 민간 기업의 지원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의 자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 - 그것이 저희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다. 이번 사업을 이야기할 때마다, 숫자로만은 다 담기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몇 명이 참여했느냐보다, 이분이 오늘 누구를 만났고 그 사람에게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꼈는지 - 그런 것들이 훨씬 더 소중한 성과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저희는 앞으로도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되기보다, 살림과 치매안심센터,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계속 마을에서 서로를 지켜주실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을 보태겠다."
- 안우석, 한국에자이 기업사회혁신 부장
서정주 사이임팩트 대표는 에자이에서의 이력을 먼저 밝혔다.
"저는 에자이라는, 여러 나라에 현지법인이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25년 동안 일하고 최근에 퇴사했다. 에자이의 기업 철학은 '모든 사람이 최대치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인지 저하가 있어도 최대치의 삶을 살 수 있도록 - MCI가 있으신 분들도 내면에 경험과 지혜를 다 가지고 계실 텐데, 그것이 발현될 수 있는 계기를 이 일자리가 마련해준 것 같다. 오랜 기간 이 일을 하며 수많은 성과공유회에 다녀봤지만, 이렇게 감동스럽고 눈물이 나는 따뜻한 성과공유회는 처음이다. 이 사업은 노인인력개발원이 인건비 펀딩을 하고, 에자이가 추가적으로 인건비 외에도 제반 비용을 펀딩하면서 만들어졌다. 빨리 제도화됐으면 좋겠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아껴서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강력하게 구두 청원을 해야 하나, 대통령한테 편지를 써야 하나 —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빨리 내년부터라도 법제화가 되어서, MCI가 있어도 당당하게 공적 시스템 안에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생길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노력해봤으면 좋겠다."
— 서정주, 사이임팩트 대표 (前 한국에자이)
은평구 치매안심센터 유미숙 부센터장은 숫자로 이 사업의 시급성을 짚었다.
"저희 센터에 등록된 경도인지장애 환자가 약 2,800명인데, 정부가 추정하는 은평구 내 실제 규모는 3만 7천여 명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진단을 받고도, 이번에 선정되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10분 외에도 훨씬 많은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래도 이 사업을 할 수 있는 은평구여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의 전 단계이긴 하지만, 내가 뭘 잘못해서도 아니고 어떤 병에 갑자기 걸려서도 아니다. 정상에서 곧바로 치매로 넘어가는 것보다, 경도인지장애를 거쳐 치매로 넘어가는 속도가 4~5배 빠르다. 그만큼 치매로 가기 전 관리를 정말 잘해야 하는 구간이라는 뜻이다. 노인인력개발원과 에자이가 이렇게 재원을 지원해주셔서, 정상적으로 돌봄 활동을 해주시던 분들 중 일부는 다시 MCI 당사자로서 이 자리에 참여하실 수도 있다. 이 사업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연결되어야, 다른 지역이 4~5배 속도를 낼 때 은평구는 3배, 2배만 속도를 내는 지역이 될 수 있다. 그런 지역으로 소문이 났으면 좋겠다. 정말 이 사업을 응원한다."
— 유미숙, 은평구 치매안심센터 부센터장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박은영 과장(사회서비스부)이 구체적인 데이터를 보탰다.
"저도 이 일을 오랫동안 실무로 담당해 왔는데,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저도 담당자로서 더 건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우리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어르신 중 최고령은 109세다. 그리고 100세 이상 참여자는 전국에 44명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 시니어들이 그만큼 건강해졌다는, 젊어졌다는 객관적인 데이터다. 아까 발표 때 93세 어르신 공연을 보고 '우리는 아직 아기'라고들 하셨는데, 그런데 60세에 시작한 노인일자리를 40년 동안 계속할 수는 없지 않은가. 뒤에 20만 명이 대기하고 있다. 그래서 일자리 사업은, 일로써 자기 삶에 정체화가 될 때 자원활동이나 틈틈이 하는 사회참여와는 질적으로 다른 단계가 된다고 생각한다."
— 박은영,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사회서비스부 과장
이 자리의 진행을 맡고 있던 최순옥 이사장이 다시 마이크를 이어받아 이 사업이 얼마나 이례적인 시도인지를 데이터로 짚었다.
"지금 이 사업에 참여하고 계신 선생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실 거다. 천만 노인 시대에,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시니어는 115만 명이고, 그중 20만 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전제 조건은 이 115만 명이 모두 건강하다는 것이다. 본인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고, 지역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고,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정부가 모든 시니어의 일자리를 지원하는 데는 예산의 한계가 있어서, 민간 기업과 함께 지역사회 안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는 사업이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4년 전 이 사업을 노인일자리로 진입시켜보자고 했을 때 처음엔 10명, 6명 규모로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건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이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정한 규모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은평구를 하나의 큰 동네로 보고 16개 전 지역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인원이 정해진 활동을 함께 하면서 개인의 변화, 집단의 변화, 사회의 변화까지 측정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일자리 사업이 가진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 최순옥,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패널 대화가 끝을 향해 갈 무렵, 최순옥 이사장은 내년을 향한 조언을 청했다. 이 자리에서 사람들이 차례로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먼저 서정주 대표가 다음 단계를 제안했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인 만큼, 지역의 건물이나 자원과 관계를 맺고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마을을 더 알아보고 사랑하고, 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개선해서 우리 의견이 사회적으로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문제 해결 활동이나 지역 자원 조사 활동을 더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안우석 부장이 향후 확장 계획을 전했다. "저는 매주 대구를 내려가고 있다. 대구에서 저희도 '인지마루'라는 사업을 시작할 것인데, 거기는 경북대학교 학생들과 함께한다. 청년들과 어르신들이 사회적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서, 대구의 인지마루는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할 수 있는 것들에 MCI 당사자분들까지 포함해서 진행할 계획이다. 은평구에서, 살림에서도 진행하신다면 청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요소가 하나 들어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미숙 부센터장은 이 아이디어를 지도라는 형태로 구체화했다. "건강이웃 사업이니, '건강이웃 둘레길'처럼 하나의 지도를 만들어서, 저희 혜택을 받는 어르신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이나 안심센터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 가까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표시해 보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박은영 과장이 제도 쪽의 숙제를 짚으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저희 구청과 기관에서 이미 좋은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이걸 좀 더 홍보해서 다양화하고 많은 분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개발원 차원, 복지부 차원에서 홍보 방안을 고민해보겠다."
최순옥 이사장은 이렇게 자리를 맺었다. "돌아가서 '또 일이 하나 늘었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가 역량과 능력이 되는 한 조금씩 시도하고 진전해볼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연구해보겠다. 함께해주신 이 걸음걸음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올해로 끝나지 않고, 내년에도 예산 지원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과정을 계속 지켜봐주시고 협력자가 되어주셨으면 좋겠다."
민간 기업의 후원과 한 사회적협동조합의 헌신, 그리고 130명 건강이웃 선생님들의 매주의 발걸음이 만든 이 결과가, 예산이 끊기면 사라지는 '시범사업'으로 남아서는 안 된고 제도화 되어야 한다는 것 - 그것이 이 대화가 남긴 공통된 목소리였다.
왜 지금, 제도화인가 — 배제의 구조와 국내외 흐름
치매 진단은 왜 '자리'를 지우는가
안우석 부장이 던진 질문 -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분들이 그 다음엔 어디로 가시나요?" — 은 이 사업의 존재 이유이자, 지금 대한민국 공적 일자리 체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공백을 정확히 짚고 있다.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시니어를 지역사회 활동에 연결하는 공적 통로다. 그런데 이 사업을 포함해 대부분의 공적 노인일자리·사회활동 참여 자격은 '사업 수행에 지장이 없는 건강 상태'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 실제로는 치매 진단, 혹은 그에 준하는 인지기능 저하 판정을 받는 순간 참여가 사실상 어려워지거나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치매 대응체계를 다룬 연구들 역시, 치매·경도인지장애 당사자를 위한 정책이 대부분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 설계되어 있을 뿐, 이들이 노동과 사회참여의 주체로 남을 수 있는 통로는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노인일자리 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에서도, 참여자의 건강·기능 수준에 따라 사업 유형과 참여 가능 여부가 나뉘는 구조 자체가 '건강한 노인만을 위한 일자리'로 좁게 운영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문제는 이 배제가 딱 잘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미숙 부센터장이 짚었듯, 정상에서 곧바로 치매로 넘어가는 것보다 경도인지장애를 거쳐 치매로 넘어가는 속도가 4~5배 빠르다. 즉 진단 이후 상당 기간 동안 당사자는 '아직 치매는 아니지만, 이미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사회에 남을 수 없는' 회색지대에 놓인다. 이 시기에 아무런 사회적 역할도 주어지지 않을 때 고립과 인지저하는 서로를 가속한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야말로, 다영역 개입이 가장 효과를 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안우석 부장의 표현대로 "진단은 받았는데 아직 치매는 아니다 보니, 오히려 그 사이에서 방치되는 분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결과다.
MCI 건강이웃 사업이 예외적으로 증명한 것은, 이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에게도 '일자리'라는 형태의 역할과 책임, 동료 관계를 부여했을 때 우울감·자아존중감·사회참여·인지기능이 함께 개선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분명해진다. 왜 지금 노인일자리 제도는 이 회색지대의 사람들을 참여 대상에서 빼놓고 있는가. 그리고 왜 이 예외적인 사례가, 민간기업 한 곳의 후원이 끊기면 함께 사라질 위험 속에 놓여 있는가.
사회참여가 인지기능에 미치는 효과 - 근거는 쌓여 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여러 연구가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 도쿄도 건강장수의료센터연구소의 후지와라 요시노리 부소장은 "예방은 검사 점수를 개선하는 일이 아니라, 사회참여를 지속시키고 고립을 막는 일"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의 연구팀이 20년 넘게 추적해온 고령자 그림책 읽어주기 자원봉사 프로그램에서는, 참여 3개월 만에 기억검사 점수가 개선됐고, 6년간 활동을 지속한 참여자들의 뇌 MRI를 비활동군과 비교했을 때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위축 속도가 유의미하게 억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타구에서 진행된 1만 5천여 명 규모의 3년 반 추적 연구에서도, 파트타임이든 풀타임이든 취업을 유지한 고령자는 인지기능 저하로 인한 요양등급 취득률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국내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사회적 관계망과 사회활동 참여 수준이 낮을수록 경도인지장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은 국내 노년학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 결과이며, 노인의 주관적 건강, 우울, 사회참여가 인지기능에 종단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축적되어 있다. 해외에서도 고령 노동시장 재진입이 인지저하를 지연시킨다는 준실험 연구,¶ 취업이라는 사회참여 형태가 인지·기능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즉 "일자리가 인지기능을 지켜준다"는 것은 이번 사업만의 특별한 발견이 아니라, 이미 상당한 과학적 근거를 가진 명제다. MCI 건강이웃 사업의 의미는, 이 근거를 한국의 지역사회 노인일자리 현장에서 실제로 재현해 보였다는 데 있다.
국제적으로도 하나의 흐름이다
MCI(경도인지장애) 당사자를 '관리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식을 만드는 주체'로 세우는 이 접근은, 국제적으로도 이미 하나의 흐름이다. 이전에 정리했던 「돌봄 이슈 리포트 1호 - 당사자를 경험전문가로 세우는 돌봄정책 전환 방향」에서 짚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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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2024년 「인지증기본법」을 통해 치매정책의 원칙을 '환자를 위해(For)'에서 '당사자와 함께(With)'로 전환했고, 인지증 본인 워킹그룹을 법·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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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국가 알츠하이머 프로젝트법(NAPA) 재승인 과정에서 치료 중심에서 '위험요인 감소·뇌 건강 증진' 중심으로 정책 초점을 옮기고 있으며, GUIDE 프로그램은 당사자를 자신의 돌봄 계획을 정의하는 주체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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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유럽에서는 스코틀랜드 치매 워킹그룹(SDWG), 아일랜드 치매 워킹그룹(IDWG) 등 당사자 조직이 국가 전략 수립과 인식 개선 캠페인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며, 국제조직인 디멘시아 얼라이언스 인터내셔널(DAI)은 치매 진단을 받은 당사자만 가입할 수 있는 정책 파트너 조직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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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오카의 '오렌지파트너스'는 기업이 당사자를 제품·서비스 공동개발자로 참여시키는 공동창조 모델의 사례다.
공통된 흐름은 분명했다. 치매·경도인지장애를 개별 환자의 의료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대응할 사회적 과제로 보았고, 당사자를 서비스의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서비스 설계의 참여자로 세웠으며, 이를 위한 당사자 기반 구조(워킹그룹, 피어 서포트 등)를 법·계획·프로그램 안에 제도적으로 박아 넣었다. "Nothing About Us Without Us(우리 없이 우리에 관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는 원칙이 돌봄 정책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MCI 건강이웃 사업이 보여준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당사자는 자신의 경험을 진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매주의 가정방문과 사례회의라는 '실천의 장'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지식으로 조립해갔다. 다만 이 실험이 개인과 조직의 성취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 안착하려면, 그 경험을 정책의 언어로 옮겨줄 통로 — 성과를 검토할 수용 창구와, 그 결과에 응답하는 제도적 구조 — 가 반드시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 이 사업이 서 있는 지점이 정확히 거기다. 경험은 조립되었지만, 아직 제도와 접속하지 못했다.
제안 — 노인일자리 정식 유형으로의 편입
이 실험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섯 가지의 개별 과제가 아니라 하나의 방향 전환이다. MCI 건강이웃을 보건복지부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의 정식 유형으로 편입시키는 것. 지금처럼 민간기업의 후원 여부에 따라 존속이 결정되는 '외부 자원 매칭형 시범사업'이 아니라, 예산과 근거가 법·지침 안에 자리 잡은 상시 유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노인일자리 제도는 '건강한 노인'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고, 그 전제 바깥에 놓인 사람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여전히 일할 수 있고 일하고 싶은 사람 - 은 참여 자격에서 벗어나거나 애초에 고려되지 않는다. MCI 건강이웃 사업은 이 전제 자체를 뒤집었다. 진단이 곧 배제가 아니라, 진단 이후에도 사회적 역할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8팀, 10쌍, 5개월의 데이터로 보여주었다. 이 예외를 예외로 남겨두는 한, 은평구의 3만 7천 명 중 10명만이 이 기회를 얻은 지금의 비율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식 유형으로 편입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참여 자격 기준에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배제 사유가 아니라 별도의 지원 유형으로 명시하는 것. 둘째, 치매안심센터가 MCI 진단자를 발굴하고 기존 노인일자리 수행기관과 매칭하는 절차를 표준 운영모델로 만드는 것 - 전국 256곳의 치매안심센터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지점이다. 셋째, 이번 사업에서 시도한 우울감·자아존중감·사회참여·MoCA 등의 지표를 표준 평가도구로 정립해, 여러 지역의 성과를 비교하고 축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별개의 과제가 아니라, '정식 유형 편입'이라는 하나의 결정이 이루어지면 뒤따라 갖춰져야 할 실행의 결이다.
민간기업의 후원과 공공기관의 협력이 만난 이번 사업의 구조 자체는 소중하다. 다만 그 협력이 지속가능하려면, 기업의 선의에 기대는 자원 매칭이 아니라 제도가 그 역할을 넘겨받아야 한다. 안우석 부장이 말했듯 "저희 같은 민간 기업의 지원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 말은 겸손이 아니라, 제도화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가장 정확한 진단이다.
맺음말
이날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렸던 말은 "감사합니다"였다. 어르신이 건강이웃 선생님에게, 선생님이 MCI 파트너에게, 기관이 서로에게. 그러나 이 감사가 반복되는 구조를 다음 세대까지 지속시키는 것은 감사의 말이 아니라 제도다.
경도인지장애가 있어도 일할 수 있고, 일해야 할 자리가 있어야 하고, 함께 일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 이것이 5개월간 8팀, 10쌍의 MCI(경도인지장애) 건강이웃이 우리에게 보여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노인일자리를 비롯한 공적 일자리에 참여하던 누군가는 치매 진단을 받는 순간 그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 경험이 은평구 한 조합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그 배제의 구조 한가운데에 MCI 당사자의 역할을 심는 대한민국 노인일자리 정책의 정식 유형으로 자리 잡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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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Risk reduction of cognitive decline and dementia: WHO guidelines, second edition (2026.7.15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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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돈, 「노인복지정책의 관점에서 본 치매대응체계 진단과 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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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기획] 노인 일자리의 진단과 개선과제」, 월간복지동향
후지와라 요시노리, 도쿄도 건강장수의료센터연구소 — 고령자 그림책 읽어주기 자원봉사 프로그램 장기추적 연구 (사이임팩트 자료 재인용)
노인 1인 가구 경도인지장애 관련 요인: 사회적 관계망과 사회활동 참여를 중심으로」, 한국노년학
「노인의 인지기능에 대한 주관적 건강, 우울, 사회참여의 종단적 영향」, 한국콘텐츠학회
"Does (re-)entering the labour market at advanced ages protect against cognitive decline? A matching difference-in-differences approach", PMC, 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