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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컬럼 1호] 웰빙(Well Being) 말고, 빙웰(Being Well)

웰빙(Well Being) 말고, 빙웰(Being Well)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부터 특정한 이미지를 갖게 됐다. 좋은 식재료로 차린 밥상, 꾸준한 운동, 마음 챙김 루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웰빙은 주로 '나'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내가 살 수 있어야 하고, 내가 관리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이 욕구를 빠르게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문제는 내가 '취약해지는 순간'이다. 아프거나, 늙거나, 누군가에게 기댈 수밖에 없어질 때 - 개인의 웰빙은 허무하게 무너진다. 시스템의 구멍을 각자가 돈과 의지로 막아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웰빙이라는 개념 자체의 한계다.
돌봄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한계를 지적해왔다. 조안 트론토(Joan Tronto)는 돌봄을 개인이 주고받는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의 집단적 삶을 유지하는 토대"로 정의했다. 잘 산다는 것은 혼자 잘 관리하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망 안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맥락에서 '빙웰(Being Well)'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웰빙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빙웰은 '어떤 상태이든 존엄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건강하고 생산적일 때만 가치 있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기꺼이 의존하고 서로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 안에서 완성되는 삶의 방식이다.
웰빙의 시선으로 보면 노후 준비는 이렇다. "좋은 실버타운 알아봐야지." 빙웰의 시선은 다르다. "우리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끝까지 존엄하게 존재하자." 돌봄 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는 이 감각을 몸으로 익혀왔다.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장 많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혼자 잘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와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 사람. 그 연결이 때로는 의존이고, 때로는 돌봄이고, 때로는 그냥 함께 있음이었다.
웰빙은 혼자 소비할 수 있다. 그러나 빙웰은 함께여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작은 모임 하나를 꿈꾸고 있다.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취약함을 솔직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자리. 기꺼이 기대고 기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모여 빙웰을 함께 가꾸어가는 사람들. 아직 이름도 형태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런 자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 같다.
Image by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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